빈 라덴 9·11 모의 장면 첫 공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알자지라 방송이 7일 보도한 알카에다의 9.11 테러 준비 과정을 담은 동영상의 한 장면. 빈 라덴(오른쪽에서 둘째)이 조직원들과 얘기하고 있다. [TV 촬영 AFP=연합뉴스]

아랍권 위성 뉴스 방송인 알자지라는 7일 알 카에다가 2001년 9.11테러를 준비하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최초로 방영했다.

이날 공개된 영상에는 알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이 9.11 테러 항공기 납치를 계획한 무하마드 아티프, 람지 빈 알샤이바와 아프가니스탄의 산악지대 훈련 캠프에서 얘기하는 장면과 훈련 장면이 담겨 있다. 검은색 상의와 흰색 두건을 쓴 빈 라덴이 훈련장을 거닐며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이슬람 전사들과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나누는 장면도 있다. 알자지라 방송은 이들 중 일부가 9.11 테러에 직접 가담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공개된 영상은 90분짜리 비디오 원본을 3분가량 분량으로 편집한 것이었다. 알자지라는 "알카에다의 선전조직인 알사하브가 제작한 것"이라고만 언급하고 언제 어떤 경로로 이 테이프를 입수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알자지라가 왜 이 시점에 6년이나 묵은 영상을 공개했는지 의혹이 일고 있다. AP 통신은 알카에다가 9.11테러 5주년을 맞아 조직원을 규합하기 위해 알자지라에 이 테이프를 전달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중동 현지 전문가들은 이 테이프가 알자지라 방송이 이미 오래 전에 확보하고 있던 것이라고 말했다. 카이로 대학의 무스타파 알사이드 정치학과 교수는 "이 영상은 9.11테러 5주년을 계기로 다시 일고 있는 음모설을 결정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알사이드 교수는 또 이 비디오가 알자지라의 대미(對美) 화해 제스처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알자지라가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테러와의 전쟁의 성과를 부각시키려는 부시 행정부에 대해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비디오가 9.11 사태 5주년에 맞춰 부시 행정부가 그동안 치러온 '테러와의 전쟁'의 정당성을 부각시켜 주는 호재라는 설명이다. 알자지라는 그동안 서방을 비난하는 '알카에다 동영상'을 일방적으로 공개했을 뿐만 아니라 이라크 전쟁 당시 친(親)저항세력 보도 성향 때문에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테러지원 방송'으로 낙인찍혀 왔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동영상 공개는 9.11사태 5주년을 기해 서방과의 불편했던 관계를 개선하려는 알자지라의 시도라는 얘기다. 알자지라는 최근 영어 채널 '알자지라 인터내셔널'을 개국했다. 또 어린이 방송, 스포츠 2개 채널 등도 운영하면서 사업영역을 아랍권은 물론 전 세계로 확대하고 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