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땐 '동전 사업'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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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까지만 해도 판매 부진으로 고민하던 의료기 제조업체 다이도-메디컬의 이희향 대표는 최근 새 희망에 부풀어 있다. 이 회사가 개발한 혈액 순환 개선용 진동 침대를 자동판매기처럼 동전을 넣으면 작동하는 방식으로 고치면서 매출이 증가세를 탔기 때문이다.

이 침대는 5백원짜리 동전 두개를 넣으면 10분 동안 작동한다. 가정 주부나 구직자 등 소자본 창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소비층으로 노린 것이 주효했다. 이전에는 수억원을 투자해 개발했으나 한의원.가정 등으로 수요가 한정돼 있는 데다 2백만원대의 고가품이어서 잘 팔리지 않았다.

제조업체는 안 팔리던 물건을 팔고, 창업자는 매일 동전으로 수만원씩을 벌고, 자리를 임대해준 찜질방 업주는 창업자로부터 일정액의 부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윈-윈'전략인 셈이다.

이처럼 동전으로 대박을 꿈꾸는 제조업체들이 늘고 있다. 이와 함께 자동판매기업으로 돈을 벌려는 소자본 창업자들도 증가 추세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자동판매기업 등 소자본 창업은 오히려 는다는 점을 방증하는 현상이다. 실제로 외환 위기 때인 1997년과 98년, 경제성장률이 3%대였던 2001년 자동판매기 판매대수가 급증했었다.

자동판매기에 대한 관심은 전시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지난 16일부터 4일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자동판매기 전시회(VENDING KOREA 2003)에는 45개 제조업체와 자동판매기 사업에 관심을 가진 수천명의 인파가 몰렸다.

IT기술을 앞세운 벤처기업들도 폰카(카메라폰) 사진 인화 자동판매기를 앞세워 '동전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제품은 기계에 동전을 넣고 간단한 조작을 하면 디지털 카메라나 폰카로 찍은 것이 일반 사진처럼 출력된다. 디카와 폰카의 높은 인기만큼 소자본 창업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제품이다. 이 시장에 뛰어든 업체만도 벌써 10여개에 이른다. 이들은 창업자들을 잡으려 판촉 경쟁도 치열하게 펼치고 있다.

기존의 커피자동판매기도 원두커피 자동판매기 등으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또 컵라면 자동판매기에 이어 일반 라면을 가정에서 끓인 듯한 라면이 나오는 자판기가 소비자들의 동전과 창업자들의 투자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자동판매기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7만8천여대의 자동판매기가 생산됐고, 현재 시장에 나온 자판기는 50만~60만대로 추정된다. 자판기 사업을 하는 투자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국자동판매기판매업협동조합의 권기혁 과장은 "자동판매기 시장은 소비자들의 반응에 민감한 만큼 수명이 짧은 편"이라며 "제조업체와 소자본 창업자들은 시장성을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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