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위헌 시비 자초한 헌재소장 편법 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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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지명 절차를 둘러싼 위헌 시비로 파행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어제 오후 청문회가 속개됐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야당은 헌법 재판관으로서의 인사청문 절차도 필요한지는 추후 논의한다는 방침이기 때문이다.

이번 위헌 시비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가 자초했다. 전효숙씨 지명 가능성이 보도될 무렵부터 법조계를 중심으로 임명 절차에 관한 문제점이 제기됐다. 헌법은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111조 4항). 따라서 현직 헌법 재판관이던 전씨를 소장으로 임명하면 남은 임기(3년)만 근무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임기 6년을 보장해 주기 위해 헌재 재판관을 사퇴토록 하고 다시 임명하는 편법을 동원한 것이다.

물론 재판관과 헌재소장 임명 절차를 따로 밟아야 한다는 요구는 지나친 형식논리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장은 헌법을 수호하고 해석하는 최고 사법기관의 수장이다. 그런 만큼 임명 과정에서 적법성 시비에 휘말린다면 국민으로부터 그 권위를 인정받기 어렵다.

전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의 전화를 받고 재판관을 사퇴했다"고 답변한 것도 문제다. 그의 설명처럼 이를 "단순히 절차에 따른 것일 뿐 (청와대와) 조율한 것은 아니다"고 얼렁뚱땅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전 후보자는 노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란 이유로 '코드 인사'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는 그가 헌재소장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마당에 임기마저 청와대가 늘려 주었으니 중립성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헌재소장 임명 절차는 법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고선 민주주의의 근간인 견제와 균형의 원리마저 깨지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헌재소장의 임기에 관한 명문 규정도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