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동생 필화 만날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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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휴전선부근 파주땅에서 젖소목장을 하는 한필성씨(56·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동패리)는 요즘 6·25때 헤어졌던 동생을 만날 생각에 마치 넋 나간 사람 같다.
오는 7일 일본에 건너가 만나게 될 북한의 동생 필화씨(48·여)생각에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세상도 많이 변했으니 이번엔 꼭 만날 수 있겠지요』왕년의 북한스케이트선수인 동생이 오는 9일부터 일본에서 열리는 동계아시안게임에 북한측 임원으로 참가한다는 소식에 한씨는 벅찬 감회에 젖으면서도 19년 전의「악몽」을 떠올리고는『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고 했다.
지난71년 삿포로프리올림픽 때 동생 필화씨(당시 29세)가 북한스케이트선수로 출전했다는 얘기를 듣고 일본으로 달려갔던 한씨는「인륜마저 외면한」북한의 방해공작으로 지척에 있는 동생을 보지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했던 쓰라린 기억이 있기 때문.
한씨의 고향은 평남 진남포시 마사리로 부모는6·25때까지만 해도 진남포에서 꽤 큰 국수집을 운영하면서 화목한 가정을 꾸려왔다.
『당시 진남포에서「골패동 막국수집」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지요』그러던 한씨 가정에 6·25는「단장」이라는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새겨놓았다.
연일 포화가 쏟아지던 그해 12월5일.『그때가 새벽3시쯤이었어요. 어머니가 잠을 깨우시더니 막무가내로 피난을 떠나라는 거예요.』
『강남인 너만은 살아야한다』며 등을 떠미는 어머니의 성화에 단신으로 피난길에 오른 16세의 필성 소년은 어머니가 밤새 만들어준 미숫가루 1봉지를 갖고 부산행 미군화물선에 올랐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다가『피난 가서 울지 마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차마 안방 문을 닫고 말더란다.『그게 생이별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동안(동안) 이지만 나이에 비해 유난히 주름살이 깊게 팬 한씨의 눈에 이슬이 맺힌다.
피난시절(53년) 결혼한 부인 홍애자씨(52)와의 사이에 낳은 2남2녀 모두 장성해 여간 믿음직스러운게 아니다.
그러나 한씨는 고향을 떠난지 40년이나 됐지만 집앞의 남새밭· 동네골목길, 무엇보다도 두고 온 가족들의 얼굴이 잊혀지기는커녕 새록새록 그리움만 더해간다고 했다.
어린 시절 유난히도 큰오빠를 따랐던 막내 필화(당시8세)가 피난 가는 오빠를 막아서며 울부짖던 모습이 아직도 마음 한편에 아픔으로 남아있다는 한씨는 이제 중년으로 변해있을 동생 모습을 한번이라도 보는게 소원이라고 했다.
더욱이 지난87년 일본에서 필화의 남편 임세진(김일성대학 체육교수)이 한씨의 부친 인석씨가 86년 96세로 작고했다고 밝힌 뒤로는 죄책감에 잠못이루는 날이 더욱 많아졌다.
그 뒤로 한씨는 지난 71년 일본기자가 전해준 북한의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는 게 일과처럼 되었다.
아버지는 타계했지만 남동생 필환씨(54)와 두 누님, 그리고 필화씨등 두 여동생, 특히 살아있다면 올해로 86세가 될 어머니 최원화씨의 안부가 여간 마음죄는 게 아니다.
동생을 만나면 전해줄 어머니의 보약과 한복지를 어루만지는 한씨의 떨리는 손끝에서 형언할 수 없는 분단의 아픔이 가슴 저 밑에서 저려왔다. <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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