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와 구명의 생사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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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인간의 죽음을 단정할때 우리는 심장의 고동이 멈추는 것을 판단의 결정적 기준으로 삼는 오랜 관습에 익숙해 있다. 그런데 의학기술의 발달로 장기이식 수술이 일반화되면서 신선한 인체 장기를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뇌사라는 새로운 사망개념이 생겨났다.
즉 호흡과 맥박이 아직 중단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뇌의 기능이 정지돼 다시는 회생할 가망이 전혀 없는 사람으로부터 장기를 적출해 그 장기만 이식하면 생명을 연장할수 있는 다른 사람에게 옮겨주어 새로운 삶을 찾게 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의술의 첨단적인 개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장기이식이라는 의학기술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사망기준인 심장사 아닌 뇌사라는 새로운 개념에 익숙지 못한 사람들에게 는 윤리적인 문제를 야기시켜 논란을 빚고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서방국들은 이미 70년대초부터 이 고비를 벗어나 장기은행과 장기네트워크 따위가 생겨 사후에 자신의 장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활용하도록 기탁하고,또 제공자와 환자를 연결하는 체제가 원활히 운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웃 일본에서는 장기이식수술 개발에 성공한 것은 서방국들과 시기적으로 비슷하면서도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본의사회 합의에 따라 부분적 장기이식 수술이 시행되고는 있으나 법률제정은 지난 88년 이래 국회에 계류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의학적으로나 법률적으로 뇌사에 대한 합의나 기준이 전혀 없기 때문에 장기기증자의 자발적인 의사표시가 확인되지 않고 장기이식수술이 실시된 예는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최근 한림대부속 강동성심병원에서 있었던 장기이식수술에 대한 논란은 우리나라 의학계에 중요한 전기가 될 것 같다. 이 병원수술팀은 뇌사상태로 판정 내려진 한 교통사고 환자의 양쪽 신장을 떼내어 다른 두명의 신장병 환자에게 이식시켜 좋은 수술결과를 얻어냈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이 교통사고 환자가 생전에 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고 주장하고,의사들은 뇌사를 단정할 만한 모든 검사를 거친 다음 가족동의를 얻어 수술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건사회부측은 우리나라가 법률적ㆍ의학적으로 뇌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의사들의 임의적인 뇌사인정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단정,살인혐의로 고발하겠다고까지 나서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구체적 사항에 관한 논란에 끼어들어 어느 한쪽을 편들 입장에 있지않다.
다만 우리나라도 첨단의료기술이 도입ㆍ개발되는 실정에 부응해 이에 합당한 법률적 또는 의학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임을 이번 기회에 강조하고 싶다. 날로 늘어나는 성인병과 세계 최고를 기록하는 교통사고율등 장기이식의 필요성과 수요는 급증하고 있고 장기이식의 활성화는 세계적인 추세다.
죽게 돼 있는 인체의 일부를 이용해 죽어가는 생명을 소생시킨다는 것은 명백히 윤리적이다. 그런 시술 자체를 살인행위로 몰아세울 여지가 있는 법률적 또는 통념적 현실은 반드시 시정될 때가 되었다.
뇌사에 대한 전문가들의 합의된 기준과 뇌사자로부터 장기를 적출할수 있는 객관적 조건등이 엄격히 마련돼야 하고 이에대한 국민의 관념과 인식도 현실적으로 전환되도록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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