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입지따라 엇가는 현안처방/양김 대표연설 「설전 대차대조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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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 속개혁 제시 못한 채 안정만 역설 여 김/민생문제 함께 걱정… 정계개편 공방은 계속될 듯/정책지향 변화… 백화점식 나열인상 야 김
26,27일 국회에서 행해진 김영삼 민자당최고위원과 김대중 평민당총재의 대표연설은 3당합당 정계개편의 당위성에 대한 두사람의 전혀 상반되는 시각을 드러냈고 정치문제뿐 아니라 민생치안ㆍ경제난국 등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현안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서도 여야로 갈라선 두 김씨의 입장을 극단적으로 대조시켜주었다.
야에서 여로 변신한 후 처음으로 정책의지를 표명한 김영삼최고위원은 여당의 성격이나 모습을 개혁하는 실질적 변화의 모습을 별로 부각시키지 못했다.
그는 지난날처럼 『개혁을 통한 안정』을 주장했으나 기존여당의 안정논리를 뛰어넘지 못했다.
이를테면 보안법ㆍ안기부법 개정문제에서 구체적 내용을 제시하지 못하고 『시대상황에 맞게 전향적으로 고쳐나가겠다』는 정도의 추상적 약속으로 그친 것이라든지,『하릴없는 지방자치제 실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신분보장』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적』 『경제정의를 실현키 위해 각종 제도개혁의 지속적 추진』 등 국무총리의 국정연설 스타일을 그대로 답습한 점등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신사고에 의한 새 정치질서 형성이라는 정계개편 명분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김대중총재는 과거의 정치지향적 태도에서 정책지향적 자세에 무게를 두었으나 너무 백화점식 나열에 그친 감이 없지않다.
특히 「무법천지」 「무정부상태」 「국민생활파탄」 「파괴음모」 「공작차원」 「역사에 대한 반역」 「국민에 대한 배신」 등 과거 독재에 대항해 싸우던 시절에나 알맞은 용어를 사용,3당통합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노출했으나 다분히 감정적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번 대표연설에서 가장 관심을 끈 부분은 정계개편의 당위성을 둘러싼 두 김씨의 공방이다.
3당합당의 바탕이 되는 정치현실에 대한 진단에서 김최고위원은 지난날의 4당구조에 대해 『정치권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경제ㆍ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킨다는 비난과 함께 불신을 받아왔다』고 부정적 시각에서 비판하고 있다.
이에대해 김총재는 『4ㆍ26총선에 의한 4당구조는 사법부와 입법부의 독립,국정감사의 부활,지방자치법제정,청문회 개최 등 지난 2년간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며 국회에서 여야합의에 의해 처리된 입법례를 구체적인 숫자까지 들어 4당정국구조를 옹호했다.
합당의 역사성에 대해서도 김최고위원은 『지난날의 어둡고 파행적이었던 정치질서를 발전적으로 극복,청산하는 역사적 과업』이라 했고 김총재는 『우리 역사상 가장 반민주적인 정치쿠데타로 역사에 대한 배반』이라고 주장했다.
김최고위원은 합당이 민주화의 완결과 국민화합ㆍ민족통일의 기틀이라고 규정하고 평가는 92년 총선에서 내리자고 제안했다.
이에대해 김총재는 합당은 ▲보수와 반동수구세력의 합작 ▲사회적 요구에 몰린 세력의 음모 ▲정경유착을 통한 기득권의 수호공작 ▲특정지역과 특정계층에 대한 철저한 고립화작전이라고 성격 규정하고 오는 6월 지자제선거때 총선을 함께 실시해 심판을 받자고 요구했다.
이처럼 서로 접점을 찾기 힘든 견해차는 정계개편을 둘러싼 정치공방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임을 예고해주는 것으로 앞으로 실시될 지자제선거및 총선에서 다시 정치쟁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두사람은 남북문제ㆍ통일문제에는 다소 시각차이는 보였으나 모두 전향적이었으며 특히 치안혼란ㆍ전세값폭등 등 민생문제에 대해서는 함께 걱정했다.
다만 김최고위원이 최근의 집단방화사건을 『국민에 대한 테러행위』라며 공권력 회복을 강조한 데 반해,김총재는 『진범을 못잡는 데 많은 의혹이 깔려 있다』고 정치적 의혹을 깔아 그들의 입지가 전혀 달라져 있음을 실증했다.〈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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