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SK 氣 꺾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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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현대의 수원성(城)은 견고했다. 회오리바람에 올라탄 SK의 비룡이 그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페넌트레이스 1위 현대가 17일 홈구장 수원에서 벌어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1위 팀의 위용을 과시하며 3-2로 승리, 먼저 1승을 올렸다.

1위 팀의 자존심을 지키고, 7전4선승제의 시리즈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지만 스코어가 말해주듯 손쉬운 승부는 아니었다. SK는 첫 출전한 포스트시즌에서 5연승 끝에 첫 패배를 당했지만 수원성이, 그리고 현대가 난공불락만은 아니라는 자신감과 용기를 얻었다.

관심을 모았던 벤치싸움에서도 현대 김재박 감독과 SK 조범현 감독의 지략 대결은 불꽃을 튀겼다. 조범현 감독이 3회초 절묘한 페이크번트(번트 동작만 취하고 대지는 않는 것)와 2루 주자의 3루 도루로 허를 찌르자 김재박 감독은 3회말 전준호 타석에서 대는 듯 마는 듯한 두번의 번트 동작에 이은 강공으로 2점을 먼저 올렸다.

현대의 첫 승은 벤치가 아닌 선수들 개인의 경기운영 능력으로 이뤄졌다. 현대 타자들은 SK선발 이승호가 평소 패턴과는 달리 커브 위주로 승부를 걸고 있다는 것을 빠르게 눈치챘다. 이승호는 1회 선두타자 전준호에게 초구 커브를 시작으로 심정수.정성훈 등 중심타자들을 상대하며 커브를 승부구로 던졌다.

이 '흐름'을 현대의 하위타자들이 읽어냈다. 3회말 선두로 나선 김동수는 초구 커브를 기다렸다는 듯 받아쳤고 전준호의 적시타에 이어 1사2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박종호도 초구 커브를 받아쳐 추가점을 올렸다.

현대는 2-0으로 앞선 5회말 SK 3루수 디아즈의 실책에 편승, 3-0으로 달아났다.

SK는 현대 선발 정민태의 구위가 다소 떨어진 7회초 현대 2루수 박종호의 실책과 정경배.김민재의 적시타로 2점을 따라붙었으나 계속된 1사 1,2루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현대 구원투수로 투입된 권준헌(7회).조용준(8회)은 각각 무실점으로 승리의 뒷문을 닫아 팀에 첫 승리를 안겼다.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페넌트레이스 1위 팀이 첫 판을 승리로 장식한 것은 모두 열번. 이 가운데 아홉번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고 1승을 먼저 올린 뒤 패권을 내준 것은 1989년 빙그레 딱 한번뿐이다. 두 팀은 17일 바워스(현대)와 스미스(SK)를 선발로 내세워 2차전을 벌인다.

수원=이태일.김종문.백성호 기자

<사진 설명 전문>
수원 홈에서 벌어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SK를 3-2로 힘겹게 누르고 첫승을 거둔 현대 선수들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왼쪽이 포수 김동수, 가운데는 마무리투수 조용준.[수원=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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