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학부모들 캠퍼스 노숙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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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칭화대 본관 앞에서 자식의 입학 등록을 돕기 위해 지방에서 상경한 부모가 돗자리를 깐 채 새우잠을 자고 있다. [칭화대 홈페이지]

우리와 달리 새 학기(9월)가 시작되는 요즘 중국 명문대 캠퍼스는 신입생들의 부모.가족들로 넘쳐난다. 자식들이 낯선 대학생활에 쉽게 적응하도록 도와주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몰려든 인파다. 물론 자식이 들어간 대학도 구경하고 축하도 겸하는 나들이다.

칭화(淸華)대학 교무처 직원은 "학생 하나에 적게는 1~2명, 많으면 10명씩 가족들이 몰려왔다"고 말했다. 베이징(北京)대학도 마찬가지다. 4000여 명의 신입생에 1만2000명이 따라온 것으로 추산됐다. 지방 명문인 저장(浙江)대학의 경우 신입생 5000명에 2만 명이 넘는 식구들이 딸려 왔다.

숙박시설이 동난 것은 당연한 일. 시골에서 올라온 남루한 차림의 부모들은 학교 운동장에 이부자리를 깔기 시작했다. 캠퍼스가 난데없이 노숙자촌으로 변한 것이다. 대학 측이 보다 못해 나섰다. 베이징대는 3일 교내 식당을 부모들의 잠자리로 개방했다. 칭화대와 런민(人民)대도 비슷한 조치를 고려 중이다. 칭화대에서 '야영' 중인 한 학부모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합격한 대학을 구경하고, 아들의 대학생활 정착을 돕는 것은 부모의 보람이자 의무"라고 말했다.

◆ 자식 공부에 '올인'=자식을 따라온 부모들은 수업료 납부는 물론 교과서.교복.생필품 구입, 기숙사 등록.입주.청소 등 대학생활에 필요한 모든 일을 해준다. 3일 현재 22일째 베이징대에서 '노숙' 중인 광시(廣西)성 출신의 학부모는 "노숙이 조금도 힘들지 않다. 아들이 명문대에 입학해 하루하루가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뺨치는 교육열이 사회주의 중국을 뒤덮고 있다. 한 칭화대 재학생은 대학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지금 지구촌은 무한경쟁에 돌입한 상태다. 부모와 자식이 힘을 합쳐야만 이길 수 있다"며 부모들의 '극성'을 적극 옹호했다.

한 베이징대 신입생은 "공부 외에 다른 일은 모두 부모님이 처리해 왔다. 과외비에도 부모님 수입의 상당액이 들어갔다. 내 공부를 위해 부모님은 모든 것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뜨거운 교육열이 중국을 바꾸는 새로운 힘이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 과잉보호 논란도=이런 현상에 대해 정부 시책에 따라 대부분 한 자녀만 둔 상황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기숙사 방 청소까지 해주는 부모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비판의 소리가 적지 않다. 베이징대 지질대학의 중웨이잉(仲維英) 교수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입학 때 부모와 함께 오는 경우가 10%를 넘지 않았지만 지금은 70% 이상"이라며 "대학생이 된 만큼 독립적인 인격체가 강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대학들은 우수학생 유치에 전력=대학들의 욕심도 부모의 교육열 못지않다. 여기에는 칭화대.베이징대 등 최고 대학들도 예외가 아니다. 베이징대는 이미 두 달 전에 쓰촨(四川)성 대학 입시에서 문과 수석이 예상되는 학생을 장학금을 주며 채 왔다. 다른 대학에 빼앗기기 전에 '입도선매(立稻先賣)'를 한 것이다. 쓰촨성에서 이과 수석을 차지한 학생은 칭화대에서 데려갔다. 칭화대는 이 학생이 거액의 장학금으로 유혹하는 홍콩대로 기울자 '사전 입학 계약'을 체결해 쐐기를 박았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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