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직장 상사 만족도' 한국이 꼴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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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상사는 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일에 치여 개인 생활은 엉망이다. 업무 스트레스는 심하고… 아, 기회만 된다면 회사를 옮기고 싶다!' 직장 생활을 편하게 하는 직장인이 얼마나 많을까만, 한국 직장인은 다른 나라에 비해 직장 생활이 더 고달프다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계 인사컨설팅 회사인 타워스 페린은 한국.미국.중국.일본 등 16개국 직장인의 의식과 생활상을 조사한 결과를 27일 발표했다. 직원 250명 이상 업체의 임직원 8만6000여 명(한국 1016명)이 응답했다. 한국 직장인들의 상사에 대한 평가는 16개국 중 최하위 수준이었다.

◆"직속 상사? 글쎄요…"=자동차 부품 회사의 연구원이던 김모(31)씨. 지난달 3년간 다녔던 회사를 그만뒀다. 그는 퇴사 이유를 "상사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구원인 내게 간단한 문서 작업과 납땜 같은 잡무만 주었다. 노하우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권위만 내세우는 데 질렸다." 김씨만의 불만은 아니다.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한국 직장인들의 상사에 대한 만족도는 바닥 수준이다. '상사가 성과를 정당하게 평가하는가'에 대해 '매우 그렇다' 또는 '그렇다'는 응답(32%)은 3분의 1이 안 됐다. 16개국 중 꼴찌였다. '부하 직원에게 권한을 위임한다'(31%)거나 '의사 소통을 잘한다'(31%)는 대답도 최하위였다. 상사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일본과 인도뿐이었다.

◆절반이 이직 희망=한국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직장인이 45%로 일본(41%).미국(35%).중국(29%)보다 많았다. '회사가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도록 지원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만족도도 19%에 그쳐 16개국 중 13위였다. 우리보다 만족도가 떨어지는 나라는 일본(13%), 이탈리아.프랑스(각 17%)였다. '개인의 성과에 따라 연봉이 인상된다'는 답도 16%뿐이었다. 이런 불만을 드러내듯 절반(48%)의 한국 직장인이 이직을 원했다. 11%는 '곧 이직할 예정'이고, 37%는 '의향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은 아니다. 오히려 독일(41%) 다음으로 낮은 수치다. 상사, 고위 경영진, 근무 여건 등 모든 분야 만족도가 세계 꼴찌인 일본 직장인은 무려 63%가 이직할 마음을 먹고 있었다. 동국대 이영면(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직장인들은 아직도 웬만하면 '이 직장에 평생 다녀야지'라는 마음이 있다"며 "회사에 불만이 있어도 곧바로 이직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돈'보다 '웰빙'='새로 직장을 택한다면 어떤 조건을 보겠는가'도 물어봤다. 나라마다 답은 제각각이었다. 한국 직장인은 의료비 지원, 휴가 중 콘도미니엄 지원 등과 같은 '복리 후생'을 첫째로 꼽았다. 미국선 '급여'를, 일본선 '도전 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업무'를, 중국은 '새로운 능력을 배울 기회'를 각각 내세웠다. 일본과 중국서도 '급여'는 두 번째로 중요했다. 그러나 유독 한국 직장인들에겐 월급이 뒷전이었다. '복리 후생'의 다음으로 '일과 삶의 균형' '퇴직 후 복지 제도'를 들었다. 각종 복지 혜택을 누리며 여유 있는 삶을 즐기는 '웰빙 직장'을 꿈꾸는 것이다. 넷째, 다섯째 조건이 '성과에 따라 연봉이 오르는 직장'과 '월급을 많이 주는 직장'이었다. 타워스 페린 서울사무소 송계전 부사장은 "무조건 월급을 많이 받기보다 성과에 따른 연봉 인상을 더 원한다는 것은 아직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연봉제가 정착되지 않았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권혁주.임미진 기자

타워스 페린=세계 26개국에 진출한 인사컨설팅 회사. 70여 년 동안 인재 관리와 보상.조직문화 등에 대한 컨설팅을 맡아왔다. 세계 500대 기업의 4분의 3이 타워스 페린의 고객이다.


타워스 페린 서울사무소 박광서 사장

부하직원에게 도전적 업무 주고 동기 부여해야

타워스 페린 서울사무소 박광서(사진) 사장은 이번 조사 결과를 놓고 "한국 직장의 문제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임이 드러났다"고 진단했다. 한국 기업 대부분이 외환위기 이후 선진국의 인사제도를 도입했지만, 이를 운영하는 관리자에 대한 훈련은 부족했다는 것이다. 직속상사에 대한 불만이 지나치게 높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회사 보고 입사한 뒤 관리자 보고 나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박 사장은 "팀.부장급이 부하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역량을 개발시켜야 하는데,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팀.부장급의 리더십을 강화하고 ▶직원들에게 도전적인 업무를 주라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도전적인 업무가 직원들의 역량을 끌어올릴 뿐 아니라 보람을 느끼게끔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직장인은 배 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고 꼬집었다. 지나치게 결과의 평등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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