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처럼 '멋지게' 가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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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뭉실 만만하게 생겨야 한다. 평소 "못생겨서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을 정도다. 입담과 수사가 탁월해야 한다. 어눌해도 좋다. 얄미운 달변들이 널려 있다. 더듬거려도 얼마든지 정겨울 수 있다. 술, 담배와 친해져야 한다. 쌓인 주독과 폐암이 삶을 앗아갔지만, 음주와 흡연의 덕도 많이 봤다. 옷차림은 세련되고 고급스러워야 한다. 시선을 '얼굴' 아래로 옮기면, 그만한 멋쟁이도 없다.

재벌은 아니더라도 갑부 쯤은 돼야 한다. 코미디언 겸 재력가였다. 아직까지는 자수성가가 미덕이다. 유럽이 아니다. 남의 가문 대대손손 부 축적을 존경하는 시선은 별로 없다. 환락을 즐기되 바람은 피우지 말아야 한다. 가정을 지키는 풍류남아, 현 시점에서도 엄연한 존재다. 술 먹이고 돈 준 주변인은 다다익선이다. 공술과 '큰 손'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정과 의리 관련 일화가 자극적이라야 한다. 가수 하춘화 박사, 박종환 감독 관련 스토리는 교과서 수록감이다. 없는 자리에서도 자주 언급돼야 한다. '~에 따르면'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려면, 거명은 필수다. 측은지심을 유발시키는 슬픈 가족사가 있으면 좋다. 1991년 6대 독자를 교통사고로 가슴에 묻었다. 전문영역을 벗어난 생소한 분야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국회의원, 사업가로서도 탁월했다.

정상에 앉아 여유롭게 회고할 드라마틱한 고생담이 있어야 한다. 김경태 프로듀서(작고)와 만나기 전까지 간난신고 뿐이었다. 측근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유사 부문 타 종목 톱클래스라야 한다. 가수 조용필, 탤런트 이덕화와 절친했다. 제3자들의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세상을 떠야 한다. 시인 윤동주는 청년, 미당 서정주는 노인으로 기억된다. TV 9시뉴스, 조간신문이 마감에 쫓기지 않는 시간에 부고를 전하면 금상첨화다. 그는 오후 3시15분에 갔다. 옛 필름을 뒤지고, 자료를 찾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27일은 '코미디 황제' 이주일(1940~2002)의 4주기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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