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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박노해」는 누구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얼굴 없는 혁명가」「노동자 시인」박노해는 과연 누구인가.
85년11월부터 경찰의 수배를 받아왔고 최근 안기부에 의해서도 수배령이 내려진 박노해의 실체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84년9월 노동자계급의 건강한 정서를 담아낸 첫 시집『노동의 새벽』을 발표해 노동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박노해.
최근 들어 그는「박노해 현상」이라는 신조어와 동명의 책이 등장할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시·산문·정치평론을 발표해 왔다.
문단과 노동운동계에서는 박노해가 초기「노동자 시인」에서 최근에는 「사회주의적 혁명가」로 변신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큰 변화를 보이게 되자 그의 실체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혼자서 집필을 해온 실존하는 개인 ▲처음부터 개인이 아닌 공동창작집단 ▲처음에는 개인이었으나 현재는 공동창작집단등 세갈래의 설이 나돌고 있다.
최근 들어 박노해가 보여주고 있는 초인적인 속도의 집필능력, 기민한 정세분석등을 고려할 때 현재는 공동창작집단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특히 최근에 발표된 일련의 글들이 초기와는 달리 일정한 문학적 틀을 유지하지 않고 있으며 견고한 목적의식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도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와 관련, 안기부는 12일 박노해가 『노동해방문학』 발행인 김사인씨(34)와 그의 주변 인물일 것으로 단정, 김씨에 대해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 받아 검거에 나섰다.
안기부는 지금까지 발표된 박노해의 모든 글과 작품이 김씨등의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3욀 『노동해방문학』창간 이후 매달 실린 박노해의 투고문이 이 잡지와 노선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 이같은 단정의 배경.
박노해는 이 글에서 자본가계급과의 비 타협적 투쟁을 통한 폭력혁명과 전노협건설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그가 김씨및 주변인물과 동일인물, 또는 집단이 아니고서는 매달 경찰수사망을 피해 원고를 전달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박노해는 지난해 6 ,7월 합본호에서 전대협의 비폭력 노선을「민중에 대한 테러」로 규정, 신랄하게 비판했다.
12월호에서는「노태우씨, 당신의 조작된 이미지를 벗긴다」는 2백자원고지 3백장 분량의 글을 통해 「붉게 동터오는 90년대는 당신에게 무척 불길한 연대」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노동해방문학』측은 박노해가 처음에는 개인이었다가 현재는 공동창작집단의 대표필명이라고 보고 있으나 발행인 김씨 주변과의 관련설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다.
박노해가 『노동해방문학』 과 처음 관계를 맺은 것은 창간을 앞둔 지난해 3월로 박노해는 자신이 보낼 글의 제목· 내용· 장수· 구성· 기일등을 메모형식으로 우편으로 보내왔다는 것이다.
박노해는 이후 매달3백∼4백장분량의 원고를 보내고 있지만 심부름센터에 의뢰하거나 반공연맹관계자라고 밝힌 낯선 사람을 통하고 있어 아무도 얼굴조차 모른다는 것.『노동해방문학』측은 그에게 알릴 사항이 있으면 사무실앞에 대자보를 써 붙이거나 메모편지를 꽂아 둔다고 밝혔다.
전 편집부장 김태종씨 (28)는 『여성지·주간지를 비롯해 사회과학잡지·문학지·사회운동단체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어 이를 게시하고 있지만 단 한차례도 회신이 없었다』 며 『수배중인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잡지사에서도 역량부족으로 감히 기획할 수 없었던 「노태우…」를 보내는 등대단한 기획·자료수집·집필능력을 보여주고 있어 집단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며『그러나 문체상의 특징으로 보아 박노해 혼자 대표집필을 맡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모든 원고가 워드프로세서로 작성돼있는 점으로 미루어 박노해가 노동현장을 떠나 별도의 작업공간을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85년말 박노해가 수배될 때까지 가장 가깝게 지냈다는 전서노련지도위원 김문수씨(39 . 서울대 경영2년 제적)는『버스운전사였던 그는 이지적이고 치밀한 동시에 뛰어난 감수성을 가진 천재였다』 라고 회고했다.
그는 『박노해는 엄연히 실재하는 사람』이라며 『다만 현재 발표되는 글의 분량과 성격등을 볼 때 공동창작집단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이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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