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에 번지는 「님비신드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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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요즘 미국인들 사이에 소위「님비」(Nimby)신드롬이 급속히 번지고 있어 연방정부를 비롯한 각급 정부기관 등이 주요 정책집행에 큰애를 먹고있다.
님비란「Not in My Backyard」라는 영어구절의 각 단어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로 『내 뒷마당에는 절대 안 된다』는 이기주의적 의미로 통용되기 시작하고 있다.
님비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 것은 최근 미국이라는 사회가 더욱 복잡해지면서 사회적 병리를 치유하기 위한 갖가지시설이 새로 요구되면서부터다.
범죄가 늘어나 감옥이 더 필요하게되고 마약문제가 큰 사회문제가 되면서 마약퇴치센터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무주택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을 보호할 시설의 증대가 요청되고 있다. 또 편리한 생활을 추구한 자연적 결과로 쓰레기와 하수가 늘어 더 많은 처리시설이 요구되며 값싼 전력을 위해 건설된 핵발전소들은 여기서 나올 방사능오염 쓰레기처리장을 필요로 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이 같은 공공시설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이「나의 뒷마당」에서가 아니라「남의 뒷마당」에서 이루어지길 원하고있는 것이다.
이들이 들어설 경우 공해나 범죄 등으로 주거환경이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님비 신드롬이 가장 심하게 드러나는 분야는 핵 관련 시설이다. 최근 10년 사이 원자력발전소가 한 건도 건설될 수 없었음은 바로 이 님비 신드롬 때문이며 핵 쓰레기 처리장과 시설건설을 놓고 네바다주와 연방정부가 공식법정대결을 벌이고 있다.
쓰레기처리장건설도 마찬가지다. 산업쓰레기 처리의 유해성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지금까지 쓰레기처리로 수입을 올리던 루이지애나 등 일부 주들이 타 주 쓰레기처리를 거부하고 있고 연방정부가 각주별로 쓰레기처리장을 설치토록 의무화한 후엔 각주들이 독자적 쓰레기처리시설을 갖출 계획을 세웠으나 장소를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뉴욕주에서는 최근 농사에 지친 한 농부가 자신의 농장을 쓰레기처리장용으로 매각을 제의했다가 주민들의 반발로 큰 곤욕을 치르고 주 정부 관리들의 현장답사가 실력으로 저지되기도 했다.
두 달 전 뉴저지주의 한 타운 주민들은 감옥이 넘쳐 주정부가 임시텐트감옥을 설치하는데 반대하는 데모를 벌였다.
엄격한 마약사범단속으로 연방정부는 더 많은 감옥을 건설할 계획이나 부지를 찾지 못해 새로운 죄수들을 위해 아직 만기가 되지 않은 죄수들을 석방하는 일이 잦아져 큰 사회문제로 지적되고있다.
뉴욕시 스테이튼 아일랜드 구청장이었던 랄프 람버티씨는 이곳에 감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가 지난 선거에서 낙선했다.
님비 신드롬의 특징은 연방정부에 대해서 각 주들이, 주 정부에 대해서 각 시 정부가, 시 정부에 대해선 각 구나 타운들이 상향적으로 나타내는데 있다.
미국인들의 님비 신드롬은 또 근본적으로 미국인들 사이에 국가나 공공이익에 대한 희생정신이 사라져가고 그 대신「나 먼저」라는 이기적 사고를 갖는 세대가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 연말 물러난 카치 전 뉴욕시장은 지난12년간 자신의 여러 업적에도 불구하고 님비 신드롬 때문에 여러 정책들이 좌절되었음을 아쉬워하며 님비 정신이 새로운 봉건주의라고 지적하고 이것이 장차 미국을 여러 조각으로 분열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부 인사들은 님비 정신을 자신의 주위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공공정신이 약화되는 현상으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젊은이들을 일정기간 국가에 봉사(군이나 공공시설 근무 등)토록 하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
이 같은 님비 신드롬이 안으로 어떤 형태로-국내건, 국제문제건-발전할지 예측할 수 없으나 갖가지 미국병을 치료하는 공공정책을 크게 저해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뉴욕=박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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