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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중견기업] "중국 디딤돌로 삼아 세계로 진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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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쥐와 바퀴벌레는 어느 정도 박멸됐다. 다음은 개미 차례다." 국내 최대 방제기업인 세스코의 전순표(72.사진) 회장은 요즘 '쥐 박사'에서 '개미 박사'로 변신 중이다. 사람의 거주 공간을 위협하는 '주적'이 쥐.바퀴벌레에서 최근에는 집개미로 바뀌어서다. 나무나 벽돌로 지어져 빈틈이 많은 단독주택이 쥐의 독무대였던 데 비해 1980년 말부터 급속히 늘어난 아파트는 바퀴벌레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최근 건축기술이 발달하고 방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바퀴벌레가 줄자 개미가 상대적으로 크게 늘었다. 개미는 바퀴벌레와 같은 서식공간에 산다. 전 회장은 "집개미는 혐오감뿐 아니라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옮기고 알레르기를 유발한다"며 "뿌리는 약을 사용하면 일개미가 도망가 여왕개미로 변신해 다시 번식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개미는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한 전순표 세스코 회장이 방제업에 뛰어든 것은 필연이었다. 먹는 문제가 가장 큰 국가적 과제였던 57년. 농림부에 들어간 전 회장은 61년 우연히 시골의 한 양곡 창고를 둘러보다 ‘식량 증산 못지 않게 쥐 피해를 막는 게 시급하다’는 걸 알게 됐다. 쌀가마니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쥐떼가 주변을 활보하고 있었다. 쥐가 먹어치우는 양은 한 해 생산되는 쌀의 1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그냥 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쥐 잡기 연구에 착수한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62년 영국 정부가 양곡 저장 피해 방지 분야의 장학생을 뽑은 것이다. 여기에 합격한 그는 런던대학에서 2년간 체계적으로 양곡관리 공부를 했다. 전통적인 식량 수입국인 영국은 집에 쥐가 있는 데도 주인이 신고하지 않으면 나라에서 벌금을 물리고, 전담 공무원이 나가 쥐의 종류에 맞는 먹이와 약을 쓰도록 지도하는 등 철저한 방제 정책을 펴고 있었다. 전 회장은 귀국후 정부에 건의해 일년에 두 차례 ‘쥐잡기의 날’을 만들었다. 65년의 일이다.또 내친김에 73년 한국 집쥐를 연구해 박사학위도 땄다. 이 때 해부한 쥐가 수 천마리에 달했다.

76년 20년에 가까운 공무원 생활을 접은 그는 서울 강남 신사동에서 국내 첫 방제회사(전우방제)를 설립했다. 시작은 쉽지 않았다. 동사무소에서 쥐약을 공짜로 나눠주는 상황에서 굳이 돈을 주고 쥐를 잡으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수퍼마켓과 백화점 등에서 어렵게 일감을 따 쥐잡기 성과를 보여주자 고객이 늘기 시작했다. 이때 경쟁사들이 생겨났지만 전 회장의 노하우를 따라잡긴 어려웠다. 그는 “도시쥐는 육류, 시골쥐는 곡류, 바닷가 쥐는 생선을 좋아하는 등 서식환경에 따라 식성이 달라진다. 먹이의 종류와 약의 농도, 내성에 따라 효과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80년대 중반 전 회장의 표적은 바퀴벌레로 바뀌었다. 영하의 날씨에선 살지 못하는 바퀴벌레가 따뜻한 아파트 집안에서 겨울을 나면서 급속히 늘기 시작했다. 당시 뿌리는 약으로 대처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그는 영국의 제약회사인 슐튼사와 제휴해 먹는 퇴치약을 만들었다. 슐튼사의 하이드로메티롤이라는 성분을 들여와 개발한 이 약은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바퀴벌레 약 중의 하나다. 세스코는 그 이후부터 성장 가도를 달렸다. 88년 서울올림픽과 93년 대전엑스포의 방제 업무를 맡으며 사세가 크게 확장됐다. 현재 인천국제공항·김포공항을 비롯해 10만여개의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다. 2001년 여름 네티즌들이 장난 삼아 홈페이지에 올린 질문에 회사가 재치있게 한 답변한 내용이 인터넷 유머 게시판과 언론에 회자되면서 세스코는 방제회사란 딱딱한 회사이미지를 벗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당시 세스코는 ‘바퀴벌레와 사랑에 빠졌는데 어떻게 하죠’란 네티즌의 질문에 ‘바퀴의 수명은 보통 2년입니다. 2년 뒤엔 어떻게 할 건가요’라고 답했다. 올해로 회사 창립 30주년을 맞은 전 회장은 방제업의 글로벌사업에 힘을 쓰고 있다. 99년 인도네시아에 첫 진출한 데 이어 지난해 중국 상하이에 지사를 설립했다. 연말까진 베이징과 칭따오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겨냥한 포석이다. 그는 “어느 나라나 올림픽을 치르면 방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방제시장이 급속히 커진다”며 “중국서 성공하면 다른 나라에 진출하기도 한결 수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tigerace@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세스코는 국내 최초의 방제기업이다. 규모도 가장 크다. 기업 방제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특히 식품공장과 특급호텔의 90% 이상이 이 회사 고객이다. 99년 전우방제란 간판을 내리고 세스코로 상호를 바꿨다. 전국에 36개의 직영 지사를 운영중이다. 방제기술자만 1000명이 넘는다.82년 국내 처음으로 설립한 방제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이 연구소는 지금도 방제분야의 유일한 연구센터다. 20여명의 석·박사급 인력이 국내 실정에 맞는 방제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신입사원은 해충의 특성과 약제, 구제법에 대한 120시간의 교육을 받는다. 기존사원도 해마다 78시간의 보충교육에 받아야 한다.방제는 매뉴얼(방제업무 표준화)에 따라 이뤄진다.어떤 직원이 나가도 똑같은 방제기법을 쓴다. 해충 퇴치 약품 생산공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 바로잡습니다

8월 21일자 E1면과 E4면의 '바퀴벌레 잡으러 청와대.국회도 갑니다' 기사 중 세스코가 국회의 방제 작업을 맡고 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므로 바로잡습니다. 세스코는 "2004년까지 국회 도서관 일부 시설 등을 맡았지만 이후 국회 시설물에 대한 관리를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이 회사는 또 "청와대 일부 지원시설의 방제를 맡고 있으나 전체를 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 방제 업체에선 "세스코가 맡고 있는 곳은 청와대 자체 시설이 아닌 파견 기관의 지원 시설이므로 청와대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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