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이런 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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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런 고요'- 유재영(1948~ )

하늘길 먼 여행에서 돌아온 구름 가족이 희고 부드러운 목덜미를 잠시 수면에 담그고 있는 동안 이곳에서 생애의 첫여름을 보낸 호기심 많은 갈겨니 새끼들이 물 밖으로 튀어 올랐다가 다시 수초 사이로 재빨리 사라진다 일순, 움찔했던 저수지가 다시 조용해졌다



고요한 곳 찾기 어렵다. 내 숨소리 들어본 것이 언제인가. 내 발소리 들어본 지 언제인가. 근처에 새가 와서 울어도 그 소리가 반짝이질 않는다. 떠도는 온갖 소리들이 가리기 때문이다. 자기 시간이 잠시도 고요하지 않다면 반성이 있을 수 있을까. 고요의 맑은 거울 속에서만 제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것. 갈겨니 새끼들 튀는, 구름 잠긴 저 저수지의 고요, 빛나는 시간이다. 고요 두어 마지기 가꿀 줄 알아야 참 사람이리.

<장석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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