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나와라 뚝딱 ! 할머니 살릴 샘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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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샘물 세 모금

최진영 글, 김용철 그림, 창비, 200쪽, 8500원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해리 포터 등 서양의 판타지에 푹 빠져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나라에도 멋진 판타지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한참 잊고 있었다. 바로 도깨비다.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방망이를 휘두르면 눈 깜짝할 사이에 금 무더기와 은 무더기가 쌓이고, 메밀묵과 씨름.장난질을 좋아하는 도깨비 말이다. 도깨비는 흔히 도리깨나 수수빗자루.부지깽이 따위로 변신한다. 그러나 눈을 씻고 둘러봐도 그런 도구들을 찾을 수 없는 요즘 아닌가. 작가는 우리의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져 간 도깨비의 흔적을 되살린다.

소설의 주인공은 학원 가기 싫어하고 씨름 배우기도 싫어하는 평범한 어린이다. 왕할머니(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소식에 준우네 가족은 시골로 향한다. 아흔 셋의 왕할머니는 힘없이 자리에 누워계신다. 그런데 '씨름'과 '참빗' 이야기가 나오자 번쩍 정신을 차린다. 알고 보니 왕할머니의 참빗에는 도깨비가 숨어 있었다. 숨어 있던 도깨비 '돌쇠'는 준우 앞에 나타난다. 돌쇠랑 씨름을 하며 놀던 준우는 돌쇠를 따라 도깨비 마을에 간다. 거기에서 '젊어지는 샘물'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귀가 번쩍 뜨인다. 할머니에게 샘물을 드시게 하면 돌아가시지 않을 테니까.

준우는 샘물을 구하기 위해 도깨비 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며 모험을 한다. 이무기와 싸우기도 하고, 구미호에 홀려 죽을 고비도 넘긴다. 우여곡절 끝에 젊어지는 샘물에 도착한 준우. 사람의 욕심은 샘물을 마르게 한다고 딱 세 모금만 뜨라는 충고를 들었지만 준우의 마음은 흔들린다.

'조금 더 떠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버지, 큰어머니, 엄마, 아빠에게 모두 나누어 줄 거야. 아주 아주 나중에 내가 마시면 안 될까…'

준우는 왕할머니에게 무사히 샘물을 갖다 드릴 수 있을까. 이야기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참 잘 짜인 소설이다. 도깨비.이무기.구미호 등 고전 설화의 요소들을 맛있게 배치했다. 단순히 흥미나 재밋거리만 추구하지도 않는다. 또래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고민과 갈등, 성장통도 잘 버무렸다. 아이는 모험을 통해 부쩍 성장한다. 머리에 이가 옮아 싫다며 씨름을 배우는 것도 그만뒀던 준우지만, 결국 못 생기고 냄새 나는 도깨비들과도 진한 우정을 쌓아가는 식이다. 표지를 비롯한 삽화도 환상의 세계를 포근하고 따뜻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

소설 속의 도깨비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 아마 도깨비가 출몰하던 시절, 정을 주고 받았던 옛 어른들의 모습을 화석처럼 간직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할머니.할아버지, 혹은 엄마.아빠에게 듣고서도 기억이 가물가물해 자녀에게 도깨비 이야기를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면 이 책을 선물해도 좋을 듯하다. 초등학교 4학년 이상.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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