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신문·방송 겸영 허용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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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 '와이브로(휴대 인터넷)'의 미국 시장 진출 발표는 '정보기술(IT) 강국-한국'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우리 손으로 만든 기술이 처음으로 국제표준이 됐고, 무엇보다 IT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채택됐다는 사실에 모두가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그냥 가슴만 뿌듯한 게 아니다. 국내 신규 고용창출 효과가 27만 명에 달하며, 국내산업 유발효과는 33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한마디로 10년간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노다지를 캐낸 것이다.

와이브로뿐이 아니다. 반도체나 초박막액정장치(TFT-LCD).휴대전화.인터넷 등 IT 분야에서 우리는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다시 말해 21세기 디지털 혁명의 필요조건은 이미 갖춰놓은 상태란 뜻이다.

그러나 우리의 법과 정책은 아직도 아날로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자유시장경제의 원리와 기술의 진보보다 이념과 '밥그릇 싸움'의 포로가 돼 있다. 이 때문에 정작 디지털 혁명을 선도하고 추동할 충분조건은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방송.통신의 융합이다. 방송영상산업진흥원 강만석 박사 등 많은 전문가는 "한국은 방송.통신 융합에 있어 기술적으로는 가장 앞서지만 제도나 정책은 후진국 수준"이라고 말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미디어 환경 변화에 걸맞게 제도나 정책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같은 논의 선상에서 이젠 신문과 방송의 겸영(兼營) 허용을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 며칠 전 한나라당이 주최한 새로운 신문법 및 언론중재법 제.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도 신문.방송의 겸영을 허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나라당 측은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허용하되, 겸영 비율은 시장점유율 20% 미만인 신문의 경우 방송사 지분의 10%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30개 나라 중 우리처럼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금지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미디어도 하나의 산업으로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춰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가 되도록 신문.방송의 겸영을 허용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 뉴욕 타임스(NYT) 회사 전체의 2005년도 매출액은 34억 달러다. 이는 신문과 방송을 겸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NYT는 모두 18개의 일간지와 9개의 TV 방송국, 2개의 라디오 방송국을 소유하고 있다. 이 같은 신문.방송 겸영으로 NYT 한 회사의 매출액이 우리 신문시장 전체 매출액의 1.5배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과 독일도 마찬가지다. 다만 여론의 독과점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로 지역에서의 겸영은 어느 정도 제한을 가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 신문산업의 환경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대부분 신문이 광고수주 감소와 구독률 하락으로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 새로운 매체의 출현 등으로 종이 신문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위기의 신문산업을 지원하려는 정부의 정책에는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이랄 수 있는 다양한 여론 형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신문발전기금 등으로 신문을 지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신문.방송.통신.인터넷의 융합이 세계적인 추세다. 우리도 이를 거스를 수가 없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른다면 점점 치열해지는 국제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해답은 자명하다. 장기적으로 신문산업 전체 발전을 위하고, 방송 등 비디어 간 형평을 위해서도 신문.방송의 겸업 허용은 필수적이다. 새로운 신문법은 이 같은 방향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신문.방송의 겸영 같은 아날로그조차 통합하지 못하면서 방송.통신이라는 디지털을 어떻게 통합할 수 있겠는가.

유재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