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스타일 탈피 우리 연극 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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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왜 관객들은 연극을 외면하고 있나. 한국 연극의 현주소는 어디이고 문화부가 신설되는 90년대 우리연극· 연극인· 연극계의 위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문화부가 생기면 과연 연극발전에 도움은 되는 것인가.
우리 연극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문화부 신설에 즈음해 연극계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난상토론이 서울 연출가 그룹 (회장 손진책) 주최로 23일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장장 8시간에 걸쳐 서울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렸다.
자연스럽게 뼈아픈 자기반성과 절규의 장이 돼버린 이날 토론회에서 연출가· 연기자· 평론가· 극작가 등 연극인들은 다양한 목소리로 그간의 무사안일에 대해 스스로를 반성하고 정부의 정책부재를 비판하면서도 앞으로의 예술정책, 특히 연극정책은 관주도를 지양, 전문가들에게 대폭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는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또 그간 유명무실했던 연극협회의 각성을 촉구하면서 앞으로는 제몫을 찾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한다는데 대해서도 대부분 공감했다.
극작가 차범석씨는 연극의 발전을 위해 ▲우리 것에 대한 성찰 ▲전문화를 위한 방법론 모색 ▲일방통행이 아닌 전문가 의견이 반영된 문화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오일 연극협회 이사장은 『연극도 하나의 상품인 만큼 질을 높이는데 힘써야 한다』며 연극전문교육기관의 신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대극장대표 김의경씨는 『연극에 관한 한 절망시대에 살고 있다』고 전제한 뒤 연극인들의 합의부재와 모럴부재가 시정돼야 연극이 산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연출가 무세중씨는 『연극은 없다』고 선언한 뒤 지금 우리 땅에 어떤 연극이 있어야 할 것인가, 또 비인간화가 가속될 90년대에는 어떻게 대비해야할까를 진지하게 재점검할 때라고 강조했다.
연출가 손진책씨는 『문제의 근원은 서구의 연극을 전형으로 삼아 우리 것을 무시했던 우리들 자신에 있다』며 『이러한 근본적인 자기반성이 없이는 희망이 없다』 고 말했다.
연출가 윤호진씨는 『지금이라도 관객 찾아 나서기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며 정부당국도 관객이 스스로 극장을 찾을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연기인 박인환씨는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이 좋아하는 재미있는 작품을 만드는 일』 이라며 관객을 속이거나 그렇다고 아부를 해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연극평론가 김문환 교수는 『공연법 개정 때, 문화부 신설발표 때, 그리고 문학발전 10개년 계획 때 연극인들은 수수방관했다』며 지금이라도 제도적 차원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출자 정진수씨는 『연극인들의 현실문제의식 결여가 가장 큰 문제』 라고 지적하고 『이제라도 뜻을 모아 자기 몫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극작가 이근삼씨도 『연극협회는 한계가 있는 만큼 연극인들이 자주 만나 의견을 제시해야한다』고 말했고 극작가 이강백씨는 『연극계에 배정된 지원금이라도 제대로 찾아 쓸 수 있도록 문예진흥기금의 지원규칙이 개정돼야 한다』고 건의했다. <유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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