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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더 모닝'] 본인 참여 대화 녹음은 합법? 불법 인정 판례가 많습니다

중앙일보

입력

국립대전현충원에서 18일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에 참석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연합뉴스]

국립대전현충원에서 18일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에 참석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오늘은 대화ㆍ전화통화 녹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최서원씨의 ‘국정 농단’을 국민이 확신하게 한 것은 정호성 전 비서관의 녹음 파일이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최씨, 정 전 비서관 3인의 대화에서 최씨가 박 전 대통령 말을 끊고 정 전 비서관에게 명령하듯 말했습니다. 정 전 비서관에게 최씨가 전화를 걸어 부하에게 지시하듯 말하는 것이 담긴 파일도 나왔습니다. 모두 정 전 비서관 스마트폰에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에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녹음 동기를 설명했습니다. 최씨 말이 맺고 끊음이 분명하지 않고 어수선합니다.

“큰일 났네. 정신 바짝 차리고 걔네들이 이게 완전 조작품이고 얘네들이 이거를 저기 훔쳐가지고 이렇게 했다는 것을 몰아야 되고. (중략) 분리 안 시키면 다 죽어.” 최서원씨가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이 말이 담긴 녹음 파일은 JTBC가 확보해 공개한 태블릿PC의 주인이 최씨라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녹음한 사람은 전화를 받은 최씨 측근이었습니다.

이완구 전 총리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을 때 기자들과 김치찌개를 먹으며 언론사 인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게 드러나 후보 사퇴 일보 직전에까지 몰렸습니다. 동석한 기자 중 한 명이 녹음한 것이 당시 야당으로 흘러간 뒤 방송 뉴스에 등장했습니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대화 녹음 파일 공개, 기억하시죠? 대법원장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온 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얼핏 떠오르는, 최근 수년간 나라를 뒤흔든 녹음 사건이 이 정도입니다. 각종 송사나 폭로 사건에 등장하는 녹음 파일은 부지기수입니다.

급기야 정당의 대표가 자기 당 대선 예비 후보들과의 통화를 녹음하고 있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골라서 그런 통화만 녹음한 것은 아니고 스마트폰의 자동 녹음 기능을 활용해 모든 통화를 녹음하고 있었습니다. 이준석 대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통화 녹음이 젊은이들 사이에선 보편화됐다는 말도 듣습니다. 취재원, 회사 선배 가리지 않고 일단 모든 통화를 녹음한다는 후배 기자도 있습니다. 회사를 경영하는 친구는 “젊은 직원들이 통화나 대화를 녹음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중요한 사업 정보를 그들에게 말하는 게 꺼려진다”고 했습니다.

후배 기자에게 왜 이런 문화가 생겼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대학 때 녹음하는 게 습관이 됐다고 했습니다. 강의 내용을 스마트폰 등으로 녹음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교수님의 숨소리’까지 복기해야 좋은 학점 받는다는, 모조리 기록하고 외워야 모범생이 되는 한국 교육의 씁쓸한 단면을 보는 듯합니다. 후배 기자는 지시 사항을 다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회사 선배와의 통화도 녹음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딴소리 하는 것’에 대한 방어 의도도 있어 보입니다.

이런 녹음 문화에는 ‘타인들의 대화’를 허락 없이 녹음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내가 참여한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합법이라는 잘못된 상식이 깔려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함부로 녹음, 재생, 녹취, 방송, 복제, 배포되지 않을 권리를 가지는데, 이러한 음성권은 헌법적으로도 보장되고 있는 인격권에 속하는 권리이다(헌법 제10조 제1문). 그러므로 동의 없이 상대방의 음성을 녹음하고 이를 재생하는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음성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하여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2018년에 나온 서울중앙지법 판결(2018가소 1358597)입니다.

이것 말고도 상대방의 허락 없이 ‘내가 참여한 대화’를 녹음하는 것을 불법행위로 규정한 판례는 많습니다. 다만, 형사 처벌 대상은 아닙니다. 민사적 사안(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입니다. 300만원 정도의 배상 판결이 나옵니다. 위 판결문에 쓰여 있듯이 ‘특별한 사정’이 인정돼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 큰 불법행위 증거 확보나 공익적 목적에서 녹음하는 것 등이 위법성 조각의 사유가 됩니다.

형사 처벌 사안은 아니고, 손해배상 액수가 그리 크지 않고, ‘특별한 사정’을 고려해 법원이 면책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가벌성’은 약합니다. 하지만 사법부가 명백히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편의적으로 상대방의 허락 없이 녹음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위 판결문에서 보듯이 헌법에 반하는 행동입니다. 미국의 10여 개 주와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는 형사상 불법이기도 합니다. 애플의 아이폰에 통화 녹음 기능이 없는 것이 이것 때문입니다.

이준석 대표와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의 통화 내용 진실 공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대표의 통화 녹취록 부분 공개가 분란을 키웠습니다. 중앙일보 사설이 '봉숭아학당'이 된 정당이라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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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여야의 막장 드라마…정치에 희망이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날마다 낯뜨거운 집안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대선을 앞둔 여야 대표 정당에서 국가 운영을 맡아보겠다는 대선후보들이나 당 대표까지 얽혀 이전투구에 정신이 없다. 내부 갈등 와중에 주고받는 언어나 방식도 저급하기 짝이 없다. 앞으로 여야가 대선에서 어떻게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민주당에선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경기관광공사 사장에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를 내정하면서 ‘보은 인사’ 논란이 불거졌다. 관광 분야 전문성이 부족하고 이 지사의 ‘형수 욕설 논란’에 대해 두둔한 게 내정 배경이 아니냐는 것이다. 대선 경선 경쟁자인 이낙연 전 대표 측이 “무자격자에 대한 채용 비리성 보은 인사를 그만두라”고 지적하면서 이 지사 측과 마찰이 본격화했다.

급기야 황씨가 직접 논란에 뛰어들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이 전 대표 측에서 황씨가 도쿄나 오사카 관광공사 사장에나 적합하다고 하자 황씨는 “이낙연은 일본 총리 하세요”라고 맞받았다. 또 “이낙연의 정치 생명을 끊는 데에 집중하겠다”거나 “이낙연 측 사람들은 인간도 아닌 짐승”이라고 막말을 쏟아냈다. 사퇴를 거부하면서 “대통령 할아버지가 오셔도 권리 포기를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표현도 썼다. 당에 해를 끼칠 지경이 되자 대선주자인 정세균 전 총리가 이 지사에게 결자해지 차원에서 황씨 내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황씨의 막말 논란이 거세지자 이 지사는 “경기도의회가 반대하면 내정을 철회하겠다”는 선까지 물러섰다.

국민의힘에선 대선 경선 토론회를 둘러싼 내홍이 봉합되는가 싶더니 더 큰 논란이 터졌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관련 발언을 놓고 이준석 대표와 대선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막장 수준의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원 전 지사가 통화에서 이 대표가 ‘윤 전 총장이 곧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히자, 이 대표는 지난 17일 밤 갑자기 녹취록 일부를 SNS에 공개했다. 자신은 ‘저거 곧 정리된다’고 말했고, ‘저거’가 윤 전 총장이 아니라 윤 전 총장과의 갈등을 지칭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느닷없는 ‘저거’ 공방은 18일에도 “녹음 파일을 공개하라” “딱하다”로 이어졌다.

당 대표와 윤 전 총장 측의 신경전에 원 전 지사가 참전하면서 국민의힘 내분은 확전 일로다. 다른 대선주자인 하태경 의원은 사적인 통화를 공개했다며 원 전 지사에게 후보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대표가 "여의도연구원이 조사하고 안 하겠습니까”라고 발언한 것을 두고 당내에선 경선 시작도 전에 주자별 지지율을 조사하며 대표가 자기 정치에 이용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여야가 벌이는 내분은 각 지지층이 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이러니 정치가 4류라는 비판을 듣는 것이다. 정말 국민에게 정권을 맡겨 달라고 할 생각이라면 두 당이 경쟁적으로 빨리 수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좋다. 민주당은 인사 논란을 초래한 이 지사가 황씨의 사퇴 수순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정권 교체의 싹을 스스로 자르고 있는 국민의힘에선 이 대표가 당 내외의 조언대로 말을 줄이고 ‘봉숭아학당’이 된 당 체제부터 복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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