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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없는데""하여간 의결"…졸속 욕먹는 '언론재갈법' 5장면

중앙일보

입력

“이 법을 이렇게 졸속으로 처리해야 되겠는가”(김승수 국민의힘 의원)
“무엇이 그리 급해 이리 졸속으로 강행 처리하는 것이냐”(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 이은주 원내수석부대표, 장혜영 의원과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김동훈 한국기자협회 회장, 방송기자연합회, 한국PD연합회 소속 회원들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강행 처리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 절차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 이은주 원내수석부대표, 장혜영 의원과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김동훈 한국기자협회 회장, 방송기자연합회, 한국PD연합회 소속 회원들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강행 처리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 절차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언론재갈법을 두고 지난 17일 국민의힘과 정의당은 한목소리로 ‘졸속’이란 비판을 했다. 이런 비판에 민주당은 줄곧 “거의 1년 전부터 자료 검토하고 수많은 분과 간담회를 했다”(김승원 의원)고 항변한다. “졸속이란 말은 하지도 말아야 할 것”(유정주 의원)이란 으름장도 놨다.

과연 이 법안은 1년간 깊이 있게 토론된 것일까, 아니면 졸속일까. 법안을 논의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속기록을 들여다봤다.

①징벌법 상정도 안 됐는데 “징벌제 도입하자”=민주당은 1년 전부터 논의했다지만, 실상 징벌제 법안이 문체위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에 처음 상정된 건 6개월 전이다. 정청래 의원이 지난해 6월 발의한 징벌적 손해배상(최대 3배) 법안은 올해 2월 25일 소위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전 소위에서 이상직 의원이 징벌제 도입을 주장하긴 했다. 지난해 11월 26일 열린 소위에선 정청래 의원의 또 다른 언론중재법 개정안(문체부 장관이 언론사에 대한 시정 명령 권한을 갖게 하는 법안)이 쟁점이었는데, 문체부는 “언론 자유 침해의 우려가 있다”(오영우 1차관)는 의견을 냈다.

이상직 의원. 중앙포토

이상직 의원. 중앙포토

그러자 이 의원은 “지금 언론사를 대변하러 왔느냐”고 따져 물었다. “예방이 중요하지 마지막에 사후적인 처벌이 뭐가 중요하냐”라며, “(언론사에도) 과감히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후 이스타항공 회삿돈 555억 횡령ㆍ배임 혐의로 구속기소(5월) 됐다.

②“여론조사 80% 찬성” 앵무새=이 의원이 당시 징벌적 손해배상제 주장을 하며 근거로 썼던 건 “지금 국민 여론을 조사하면 80%가 가짜뉴스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죽겠다는데”였다. 이는 미디어오늘ㆍ리서치뷰의 지난해 조사(5월 28~31일) 결과 징벌적 손해배상제 찬성이 81%였다는 결과를 일컫는다. 이 의원의 논리는 이후 송영길ㆍ윤호중ㆍ김용민ㆍ김승원 의원 등이 이어받아 각종 회의와 소위에서 무한 반복했다.

2월 25일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 속기록.

2월 25일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 속기록.

이들이 인용한 해당 조사의 질문 문항은 “귀하께서는 ‘허위ㆍ조작 가짜뉴스’를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다. 국민의힘에선 “이 세상에 가짜뉴스를 처벌해야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여론 호도다”(7월 27일 소위, 최형두 의원), “‘가짜뉴스는 처벌돼야 된다’, 당연한 항진 명제(항상 참인 명제) 아닌가”(8월 10일 전체 회의, 김승수 의원)라고 맞받고 있다.

③“문체위는 핫바지”=민주당이 징벌적 손해배상액 상한선을 3배에서 5배로 늘린 법안의 형태로 법안소위에 가져온 것은 강행처리 당일인 지난달 27일이었다. 이전에 야당과 논의한 적 없는 내용이다. 국민의힘은 “3배도 위험하다 생각했는데 이것을 갑자기 5배로 올려놓고 깜짝 법안처럼 내놓느냐”(최형두 의원)라고 반발했다.

▶이달곤(국민의힘)=“(갑자기 법조문을 바꾸면)저희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김승원(민주당)=“저희는 (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회의만 열 차례 했다.”
▶이달곤=“미디어 뭐요? 그것을 그대로 우리 상임위원회가 받아 와서 합니까?”

5월 31일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 출범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5월 31일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 출범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런 대화를 하던 이달곤 의원은 “지금 제가 느끼고 있는 분위기는 문체위 법안소위는 완전히 핫바지다. (민주)당 안에 있는 미디어특위가 열 번 회의를 해 가지고 만들어 낸 것을 그대로 밀고 가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④여당도 헷갈린 입증책임=최대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고의ㆍ중과실 추정 규정이 도입되면 입증책임이 누가 지게 되는지를 두곤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다르거나, 같은 사람이 정반대 얘기를 하는 등 혼선을 보였다.

강행처리를 마음먹고 들어 온 지난달 27일 소위에서도 여권 의원들은 “피해를 호소하는 자가 입증을 해야 한다”(김승원 의원)→“언론사가 입증하라고 법을 만든 것 아니에요?”(박정 의원)→“입증 책임을 언론사에 넘기는 그런 내용이다”(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라는 등의 문답을 나눴다. 듣고 있던 이달곤 국민의힘 의원에게서 “여당 안에서 지금 상치되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0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10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2주 후 열린 8월 10일 전체 회의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입증 책임(고의·중과실이 없다는 걸 입증해야할 책임)이 언론사에 있다던 김의겸 의원은 “언론사에 입증책임을 완전히 전가하는 조항이 아니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내뱉었고, 박정 의원은 “증명하는 것은 언론에서 하겠지요”라고 말했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의결해 놓고도 여당 위원조차도 입증책임이 누구한테 있는지도 몰라요”라고 말했다.

⑤대안 없지만 “하여간 의결”=지난달 27일 소위는 ‘달라진 법안’(배상액 3배→5배 등)을 놓고 여야가 대치하며 시작됐다. 그렇게 8시간여 합의 없이 평행선만 그리던 중, 박정 소위원장은 문체위 수석전문위원에게 “정리된 것을 말씀해달라”고 말했다. 수석전문위원은 “지금까지 논의 과정을 통해서 민주당 수정의견에서 합의를 통해서 확실하게 달라진 내용은 없었다”라고 답했다.

그런데도 박정 위원장은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을 종합 반영하여 본회의에 부의하지 아니하고 위원회 대안으로 의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대안이 있어야 의결을 할 것 아닌가”(이달곤 의원), “우리가 언제 대안 마련했나”(최형두 의원)라고 즉각 항의했다.

이에 대한 박 위원장의 답변은 이랬다. “하여간 위원회 대안으로 의결하고자 하는 것에 찬성하시는 위원님 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언론재갈법이 강행 처리되던 7월 27일 문체위 소위 속기록.

언론재갈법이 강행 처리되던 7월 27일 문체위 소위 속기록.

표결은 그렇게 진행됐다. 박정 위원장은 “재석 6인 중 찬성 4명, 반대 2명으로 가결되었음을 선포한다”라며 의사봉을 두드렸다. 박정ㆍ김승원ㆍ유정주 민주당 의원과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합심해 찬성한 결과였다.

이날 국민의힘은 “나중에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이렇게 무리하게 진행하느냐”(최형두 의원)고 항의했지만, 민주당과 김의겸 의원은 이달 내 본회의 통과 목표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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