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의 82년생이 묻는다, 지금 여기 우리는?

중앙일보

입력 2021.08.19 00:03

업데이트 2021.08.19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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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아찔하다. 어두운 전시장 벽면이 순식간에 수천수만 개의 반짝이는 나뭇잎으로 뒤덮인다. 초록 세상도 잠시, 숲은 갑자기 불타오르고 나뭇잎은 먼지처럼 사라진다. 이어 빌딩들이 솟아나고 도시는 금세 거대한 빙하로 변한다. 지구의 탄생과 소멸을 압축한 듯한 풍경은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웅변하는 듯하다.

강이연의 미디어 아트 ‘무한’‘유한’
구지윤의 도시 주제 추상회화
전소정의 인적 드문 DMZ 영상
예리한 시각으로 이 시대 통찰

각기 자기만의 시각으로 시대에 대한 질문을 던진 작품들. 강이연의 ‘유한(Finite)’. 이은주 기자

각기 자기만의 시각으로 시대에 대한 질문을 던진 작품들. 강이연의 ‘유한(Finite)’. 이은주 기자

미디어 아티스트 강이연(39)의 신작 ‘유한(Finite)’이다. 6분 50초짜리 이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은 전시장의 벽과 바닥을 영상으로 감싼 것으로, 온몸을 휘감는 듯한 스케일로 영상과 사운드를 구현했다.

요즘 국내 화랑가에 젊은 작가들의 전시가 쏟아졌다. 미디어 아트부터 추상화까지 장르는 다르지만 각기 탄탄한 실력과 개성 뚜렷한 시각으로 우리가 직면한 시대를 성찰한 작품을 내놨다. 강이연은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개인전 ‘앤트로포즈(Anthropause)’를, 구지윤은 인근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인전 ‘혀와 손톱’을 열고 있다. 전소정은 서울 삼성동 K-팝 스퀘어 옥외 스크린에 작품을 상영 중이다. 팬데믹 시대, 현대 도시, 비무장지대(DMZ)에 대한 통찰로 ‘지금, 여기, 우리’의 문제를 다룬다. 세 작가 모두 1982년생이다.

강이연

강이연

강이연은 지난해 ‘커넥트, BTS’ 글로벌 현대미술 프로젝트에 유일한 한국 작가로 참여했다. 이번 전시에 신작 두 점 ‘무한’과 ‘유한’을 통해 디지털 이미지와 사운드로 공간을 입체적으로 빚어냈다. 숲과 빌딩, 빙하, 화재 장면을 정교한 이미지로 구현한 점도 눈길을 끌지만, 사운드(음향) 효과로 작품 완성도를 크게 높였다. 숲의 소리, 제1·2차 세계대전 소음, 그가 작곡한 피아노 선율이 들어간 11채널 음향이 울림을 증폭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강 작가는 “인류는 끝없이 팽창하는 디지털 데이터처럼 삶의 양과 질 모두 무한대로 증대시킬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며 “모든 존재가 유한하다는 진실을 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형 스크린에 빛의 투과·흡수·반사 작용을 활용한 또 다른 작품 ‘무한’은 1880년부터 현재까지 총 150년간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량 변화를 담았다. “아이슬란드 환경운동가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의 책  『시간과 물에 대하여』에서 영감 받았다”고 했다. 인류와 기후변동의 관계, 미래를 공감각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미국 UCLA에서 디자인·미디어 아트(석사), 영국 RCA(왕립예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마쳤다. 최근 서울 잠실 롯데타워에서 김환기 ‘우주’ 미디어 프로젝트를 선보인 바 있다. 이번 전시엔 두 작품의 설계과정을 담은 드로잉도 공개한다. 전시는 21일까지.

강이연이 첨단 매체로 작품을 구현했다면, 구지윤은 대형 추상회화로 ‘현대’에 대한 통찰을 드러냈다. 색채와 선의 조형 요소가 뒤엉킨 화면에 도시의 에너지와 분위기를 젊은 감각으로 표현했다.

구지윤의 ‘시니어(Senior)’(2021, 린넨에 오일, 290.9x218.2㎝). [사진 아라리오]

구지윤의 ‘시니어(Senior)’(2021, 린넨에 오일, 290.9x218.2㎝). [사진 아라리오]

구지윤은 “현대 도시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며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한 낡은 건물들, 헌 것을 부수고 새 건물을 올리는 도시 의 욕망을 화면에 담고 싶었다”고 했다.

구지윤

구지윤

강소정 아라리오 갤러리 디렉터는 “구지윤은 도시 모습 묘사를 넘어 심리적 도시 풍경을 담아낸다”며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탁한 색과 밝은색이 대비되고, 날카롭고 거친 선과 두텁고 부드러운 선이 혼재하는 화면이 독특한 미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했다.

강이연과 구지윤은 예원중, 서울예고를 같이 다녔다. 구지윤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예술사 과정을 마치고, 시카고 미술대를 거쳐 뉴욕대에서 석사 과정을 끝냈다. 전시는 9월 25일까지.

전소정의 ‘그린 스크린’(2021, 2분 30초).[사진 바라캇컨템포러리]

전소정의 ‘그린 스크린’(2021, 2분 30초).[사진 바라캇컨템포러리]

현재 전소정의 작품 ‘그린 스크린(Green Screen)’은 서울· 도쿄· 런던 세 도심의 옥외 스크린에서 매일 오후 8시 21분에 하루 한 번씩 2분 30초씩 선보이고 있다. 조셉 오코너 영국 CIRCA 예술감독이 추진한 글로벌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지난 5월엔 데이비드 호크니의 디지털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서울 상영 장소는 코엑스 K-팝 스퀘어 스크린. 한국 작가는 전소정이 처음이다.

전소정

전소정

‘그린 스크린’엔 DMZ 경계가 담겼다. 전소정은 지난 6월부터 민간인 통제구역 인근에 허가를 받고 들어가 60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러 후보자 중 전소정을 선택한 조셉 오코너는 “분열이 심화하는 국제사회에서 갈등과 지리적 분리의 경계를 극복하는 예술의 잠재력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전소정은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했다. 2018년 제18회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을 받았다. 상영은 이달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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