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300년 가보는 '운석'…전통 나침반 '윤도' 장인의 세계

중앙일보

입력 2021.08.16 14:55

업데이트 2021.08.16 15:14

”백옥가루를 바르고 삭~ 긁어내는 순간 다들 와! 하더라고요“

12일 전북 고창의 윤도장 전수관에서 만난 김희수(59)씨는 지난 6월 무형문화재 심사를 하던 때를 회상하며 손에 쥔 나무판을 칼로 박박 긁었다. 긁어내는 자리마다 먹칠한 검정 바탕에 백옥 가루가 박힌 흰색 글씨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김씨가 손에 쥔 건 전통 방식으로 만든 나침반 ‘윤도’다.

김희수씨는 이달 4일 무형문화재 윤도장 보유자로 지정예고됐다. 증조할아버지, 둘째 큰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4대째 윤도를 만들고 있다. 현재는 아버지 김종대(87)씨가 국내 유일한 윤도장 보유자다.

자신이 만든 윤도장을 들고 있는 윤도장 보유자 김희수씨. 권혁재 기자

자신이 만든 윤도장을 들고 있는 윤도장 보유자 김희수씨. 권혁재 기자

24겹 동심원에 3000자 새긴 옛 나침반

윤도(輪圖)는 ‘바퀴모양 그림’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에 풍수를 따질 때 나침반 역할을 하던 물품이다. 나무로 된 원형 판에 4방위와 팔괘, 십간, 십이지, 24절기, 28숙 등 음양오행과 역을 나타내는 한자를 빼곡히 새겨넣고, 가운데에 자침을 얹어 만든다. 한자가 새겨진 동심원이 많게는 24겹, 이 때 새겨야 하는 글자수는 3000자가 넘는다. 양반가에선 부채나 손거울 등에 달아 멋을 뽐내는, '명품'으로 여겨지던 소품이다.

무형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인 이승주 전 한국전통대학교 무형유산학과 강사는 ”전통적인 동양의 하늘에 대한 인식, 천리에 대한 이념을 한 판에 구현한 것“이라며 ”나무도 다루고, 금속도 다루고, 각자(刻字, 글자를 새기는 것)도 해야해서 난이도가 높은 기술이고, 음양오행도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작업인데다 고창 지역에만 전해 내려오는 것도 희귀한 면모"라고 윤도장의 의미를 설명했다.

윤도장 보유자 김희수씨가 작두로 대추나무를 다듬는 장면. 권혁재 기자

윤도장 보유자 김희수씨가 작두로 대추나무를 다듬는 장면. 권혁재 기자

지난 6월 무형문화재 현장실사에선 전기톱 등 현대식 도구를 쓰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전통 방식으로 윤도를 만들었다. 할아버지 때부터 쓰던 컴퍼스, 작두, 칼, 조각칼로 단단한 대추나무를 다듬고 글자를 새긴다. 윤도에 새기는 글자는 보통의 활자와 다르게 ‘푹 찍어 훅 떠내는’ 식으로 파내, 쐐기문자의 형태와 비슷하다.

김씨네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백옥을 갈고 있는 윤도장 보유자 김종대 장인. 김정연 기자

김씨네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백옥을 갈고 있는 윤도장 보유자 김종대 장인. 김정연 기자

조각이 다 끝나면 면 전체에 먹칠을 한 뒤 말리고, 다시 백옥가루를 갈아 칠한 뒤 말린다. 이후 칼로 윗면을 평평하게 긁으면 백옥가루만 갈려 나오면서, 글자 사이에 끼인 백옥만 남아 검정 바탕에 흰 글자가 보이게 된다.

먹을 바른 뒤 말리고, 백옥을 덧칠해 말리면 사진처럼 하얗게 마른다. 평평한 쇠막대로 표면을 긁으면 겉면의 백옥만 긁혀나가고, 글자 속에 박혀들어간 백옥은 남으면서 '검정 바탕에 흰 글씨'가 드러난다. 김정연 기자

먹을 바른 뒤 말리고, 백옥을 덧칠해 말리면 사진처럼 하얗게 마른다. 평평한 쇠막대로 표면을 긁으면 겉면의 백옥만 긁혀나가고, 글자 속에 박혀들어간 백옥은 남으면서 '검정 바탕에 흰 글씨'가 드러난다. 김정연 기자

나무 깎고, 강철 갈고, 대대로 내려오는 '운석'으로 완성

윤도장 보유자인 김희수(왼쪽)와 김종대씨가 자침을 다듬는 장면. 권혁재 기자

윤도장 보유자인 김희수(왼쪽)와 김종대씨가 자침을 다듬는 장면. 권혁재 기자

나침반의 핵심인 '자침'은 강철을 줄로 균일하게 갈아 만든다. 완성된 침은 가문에 300년 넘게 전해 내려온 운석에 하루 정도 붙여두면 자성을 띤다. 침을 윤도 가운데에 얹고 유리판을 끼우면 완성이다.

김희수씨 가문에 300년 넘게 대를 이어 전해내려오는 운석에 자침을 붙여놓은 모습. 자침에 자성을 더하는, 윤도 제작에 핵심적인 물건이다. 원래 2개가 있었으나 선대에 하나를 잃어버려 지금은 하나만 남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20210812

김희수씨 가문에 300년 넘게 대를 이어 전해내려오는 운석에 자침을 붙여놓은 모습. 자침에 자성을 더하는, 윤도 제작에 핵심적인 물건이다. 원래 2개가 있었으나 선대에 하나를 잃어버려 지금은 하나만 남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20210812

윤도 하나를 만드는 데에는 보통 2주 정도 걸리지만, 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한 현장실사에선 모든 걸 하루 만에 해야 했다. 심사위원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가 넘도록 작업실에서 김씨의 손을 지켜봤다. 한 심사위원은 ”자침을 2시간 만에 갈아냈는데, 평소라면 말도 안되는 속도“라며 혀를 내둘렀다.

고창 지역의 윤도가 유명할 수 있었던 건 이 지역 뒷산에 있는 거북바위 덕도 있다. 거북이가 엎드린 것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붙은 이 바위의 거북 등 부분에는 길게 홈이 패여 있는데, 이 홈이 정확히 동서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한다. 완성된 윤도를 가지고 거북바위에 올라 홈과 직각을 이루는지 확인하는 게 윤도 제작의 마지막 단계다.

제약회사, 건설회사 다니다 다시 고향으로

똑같아보이는 윤도지만 왼쪽은 김씨가 공예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 오른쪽은 김씨가 처음 윤도 제작을 시작했을 때의 작품. 왼쪽의 글씨체가 더 바르게 서있고 선의 굵기도 고르다. 김정연 기자

똑같아보이는 윤도지만 왼쪽은 김씨가 공예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 오른쪽은 김씨가 처음 윤도 제작을 시작했을 때의 작품. 왼쪽의 글씨체가 더 바르게 서있고 선의 굵기도 고르다. 김정연 기자

처음부터 가업을 이으려던 건 아니었다. 김씨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서울에서 13년간 제약회사, 건설회사를 다녔다. 매일 아침 전화해 ”네가 이걸 빨리 이어받아야 하는데 어떡하냐“고 걱정하던 아버지에 더해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기술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운 마음에 직장을 접고 고향으로 향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조금씩 기술을 배워 지금까지 약 40년간 윤도 제작이력을 쌓았고, 2007년 문화재 전승교육사로 인정돼 지금까지 왔다.

"마루에서 돌 때 송곳 쓰던 할아버지 기억"

김희수씨는 4남 1녀 중 장남이다. 5남매 모두 조금씩 윤도를 배우긴 했지만 굳이 김씨가 대를 잇겠다고 나선 건, 어린 시절 봤던 둘째 큰할아버지(김종대씨의 둘째 큰아버지, 고 김정의씨)의 기억 때문이었다. 김씨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마루에서 할아버지가 돌때송곳으로 철심에 구멍뚫고, 나무깎는 걸 보면서 신기해했다“며 ”할아버지도 나를 예뻐해서, 다른 동생들은 ‘연장 없어진다’며 근처에도 못 오게 했지만 나는 구경하게 해줬다“고 회상했다. 그때 어렴풋이 봤던 작업이 뇌리에 남아,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본격적으로 전수받을 때에도 크게 도움이 됐다고 했다.

윤도장 보유자 김희수씨의 둘째큰할아버지 고 김정의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윤도장 보유자 김희수씨의 둘째큰할아버지 고 김정의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씨가 보고 자란 둘째 큰할아버지는 문화재청 심사위원들이 꼽는 '가장 솜씨 좋았던 윤도 제작자'다. 그 영향인지 한 심사위원은 "김희수씨는 전수를 늦게 시작해서 조금 걱정했는데, 솜씨가 너무 좋아서 놀랐다"고 전하기도 했다.

천년 대추나무도 쟁여놨는데… 후임은 어디서 찾나

윤도장 보유자 김희수씨가 보관 중인 천년된 대추나무. 권혁재 기자

윤도장 보유자 김희수씨가 보관 중인 천년된 대추나무. 권혁재 기자

윤도로 생계를 유지하긴 어렵다. 모든 공정을 김씨가 직접 손으로 해야 하다 보니, 한 달에 많아야 두어개밖에 만들지 못한다. 대추나무가 복을 불러온다 하여 연말이면 기업체, 공공기관 등에서 선물용으로 수요가 많지만, 그만큼 만들지 못해 ‘공허한 수요’일 뿐이다. 그래서 생계는 농사로 유지한다. 지난해 했어야 할 무형문화재 심사도 인삼 농사를 짓느라 미뤄져 올해 받았을 정도다.

윤도장 보유자 김희수씨의 작업도구. 할아버지 때부터 쓰던 도구들은 손잡이에 손때가 묻고 반질반질해졌다. 권혁재 기자

윤도장 보유자 김희수씨의 작업도구. 할아버지 때부터 쓰던 도구들은 손잡이에 손때가 묻고 반질반질해졌다. 권혁재 기자

그가 사용하는 먹, 백옥, 운석, 대추나무는 모두 혼자 쓸 분량이 아니다. 대를 이어 내려왔고 대를 이어 물려줄 생각으로 쟁여둔 물품들이다. 10년 말린 뒤 써야 하는 대추나무가 창고에 가득하고, 천 년 묵었다는 대추나무도 통으로 누워있다. 김씨는 "아껴뒀다가 다음 사람이 쓰라고 남겨둘 예정"이라고 했지만, 새롭게 윤도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도 적다. 현재 김씨를 제외하고 윤도 제작에 종사하는 사람은 없다. 김씨는 "아들 딸 다 교육은 어느 정도 받았는데, 윤도를 만들진 않고 있다"며 "대를 이어 할 사람을 찾아야 할 텐데, 전수조교 30년을 해도 70만원밖에 못 버는 일이라 누가 하려고 할지 고민"이라고 덧붙였다.

김희수씨는 한 달의 인정 예고기간 이후, 무형문화재심의위원회를 거쳐 보유자 인정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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