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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안경·차키형 등 별별 카메라, 당신을 훔쳐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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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9호 15면

곳곳서 판치는 몰카

지난 10일 경찰관과 인천교통공사 직원이 인천지하철에서 ‘몰카’를 단속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일 경찰관과 인천교통공사 직원이 인천지하철에서 ‘몰카’를 단속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 사는지, 누가 사는지는 물어보지 않죠. 파는 사람이 잘못인가요? 사서 몰카 찍는 놈들이 나쁜 놈이지.”

불법 촬영 안전지대 없어 #발각될 확률 낮고 구하기도 쉬워 #“기록 안 남게 계좌이체로” 권유도 #몰카 해마다 5000건 이상 적발 #전문가 “실명제·등록제 도입해야”

서울 종로구 전자상가 매장 주인 김모씨는 “솔직히 일반인 중에 떳떳한 이유로 변형 카메라를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불륜 등의 증거를 모으기 위한 목적인지 불법적인 촬영의 목적인지 판매하는 입장에서 알 수도 없고 알려 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달 초 둘러 본 서울 종로와 용산 일대의 전자상가에선 다양한 모양의 변형 카메라를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소형 카메라’를 찾는다고 하면 매장 주인들은 펜형, 안경형, 자동차 키형 등 잘 팔린다는 제품을 소개하며 사용법을 직접 알려줬다.

무조건 규제, 또 다른 피해자 만들 수도

한 점주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카드 사용이 기록이 남아서 부담되면 계좌이체로 구매하라”며 할인 가격을 제시했다. 종로에서 7년 동안 장사를 했다는 정모씨는 “인터넷을 통해 불법 개조 제품을 파는 사람들이나 악용하는 사람들을 단속해야지 우리가 무슨 잘못이냐”고 반문했다. 현행 전파법상 인증된 변형 카메라 판매를 규제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전파법은 인체나 다른 기기에 영향을 미치는 전자파를 확인하는 것이다 보니 카메라의 크기, 형태 등을 고려하지는 않는다. 또 일부 변형 카메라의 경우 수사기관에서 활용하는 경우도 있고, 학교 폭력이나 스토킹 범죄의 증거를 수집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어서 무작정 소형 카메라 구매 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럼에도 변형 카메라를 이용한 범죄가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며 구매에 일정한 규칙을 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고등학교 교사가 학교 여직원 화장실과 이전에 근무했던 학교의 여학생 기숙사에 화재감지기 모양의 카메라를 설치해 불법 촬영한 혐의로 구속됐다. 그의 휴대전화에서는 699건의 불법 영상이 발견됐으며, 피해자만 166명에 달한다. 또 2019년부터 자동차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여성 수강생들의 신체를 불법 촬영한 운전 교습 강사에게 검찰이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충남 천안에서는 친구의 아버지가 자동차 키 모양의 카메라로 자신이 샤워하는 모습을 촬영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불법 촬영 범죄는 도시 괴담이나 일부 여성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불법촬영 범죄는 4만7000건에 달한다. 2015년 7623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불법 촬영 문제가 수면위에 떠오르고 정부와 경찰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면서 소폭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해마다 5000건 이상 적발된다. 물론 불법 촬영 범죄에는 일반 카메라나 휴대전화를 이용한 도촬 건수도 모두 포함한 것이어서 모두 변형 카메라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발각될 확률이 낮고 구하기도 쉬워 변형 카메라를 동원한 범행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것이 수사당국의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성들은 성폭행 범죄보다 불법 촬영을 더 두려워하기도 한다. 2019년 서울경찰청이 서울 거주 여성 3892명 대상으로 범죄별 불안도를 조사한 결과 불법 촬영이라는 응답이 1246명(32%)으로 가장 많았다.

“공중화장실 몰카 점검 실효성 없어”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불법 촬영 범죄의 대부분은 지인이 저지른다. 2019년 발생한 불법 촬영 범죄 5762건 가운데 다중이용시설에서 적발된 경우는 숙박업소·목욕탕 364건, 역·대합실 654건, 지하철 626건 등 2039건이었다. 전체의 60%는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라는 얘기다. 실제로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매년 50억원을 들여 공중 화장실의 몰래카메라를 점검하고있지만, 지금까지 적발 건수는 전혀 없다. 공중시설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불법 촬영이 많을 것이라는 통념과는 반대되는 결과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화장실 몰래카메라는 보통 남녀가 같이 들어갈 수 있는 민간 화장실에서 발생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정부가 공중화장실을 특정해 점검하는 것 자체가 실효성이 없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효과적인 대책 마련이 어렵다 보니 사설업체 등에 몰카 탐지를 의뢰하는 방식으로 불안감을 달랠 수밖에 없다. 불법촬영 기기 탐지를 전문으로 하는 프로정보통신의 이정직 대표는 “5년 전과 비교하면 몰카 탐지 의뢰가 정말 많이 늘어 하루 3~4건씩 들어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드론 산업이나 가정용 로봇·폐쇄형TV, 의료기기 등에 널리 쓰이는 변형 카메라 자체를 전면 규제하는 것은 무리다. 전문가들은 ‘실명제·등록제’ 도입 등을 통해 무분별한 유통을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6월 ‘변형 카메라 관리에 관한 법률안’ 입법 토론회를 주최한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변형 카메라에 대한 등록제를 도입하고, 구매 이력 정보시스템을 구축해 관리한다면 불법 촬영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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