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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과연 어디로 가나|불 주간지 5가지시나리오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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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얄타 체체 붕괴 이후 유럽은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인가. 베를린 장벽이 사실상 허물어지고,독일 통일 문제가 다시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면서 유럽인들의 관심은 온통 이 문제에 쏠리고 있다.
유럽 각국 언론들은 연일 독일 재통일 문제를 최대의 이슈로 집중 보도하고 있고, 유럽의 장래에 대한 갖가지 시나리오가 만발하고있다. 그 가운데 「전후 체제의 붕괴」를 특집으로 다룬 프랑스의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최신호(11우러17일자)는 유럽의 장래와 관련, 가능한 5가지의 시나리오를 게재, 관심을 모으고있다.
유럽 내 주요 정치가 및 학자, 유러크래트 (유럽 공동 기구의 관리) 들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이 다섯 가지 시나리오를 통해 안개 속에 가려있는 유럽 역사의 새로운 방향을 가늠해 본다.
◇제1시나리오(현상 유지)=동독 시민들의 개혁 압력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지지는 않을거라는 가정 아래 유럽의 전문가들이 단기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는 시나리오.
현재 동독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민주화 작업은 더욱 가속화되지만 동독이라는 현 국가 체제와 대외 동맹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된다는 게 이 시나리오의 골자. 앞으로 있을 비밀·자유 선거의 시기와 결과가 주요 관건이지만 독일 재통일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큰 지지를 얻지 못할 경우 동독은 헝가리나 폴란드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으로 이 시나리오는 보고있다.
한편 EC (유럽 공동체) 통합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EC 각국은 민주화 과정에 들어선 동구 여러 나라들과 경제 협력을 가속화하게 된다.
◇제2시나리오 (동·서독 연방제)=1949년에 제정된 독일 기본법에 비추어 제1시나리오만큼 가능성이 높은 걸로 평가되고 있는 시나리오. 사실상 지금까지 서독의 그 어느 정치지도자도 동·서독 연방제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아 왔다.
그러나 유럽의 일부 전문가들은 이 시나리오를 지나치게 관념적인 걸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연방제하의 독일은 군사적으로 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나 바르샤바 조약 기구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중립화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데 이는 곧 유럽의 긴장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과연 동·서독이 이 같은 무모하고 위험한 도박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
◇제3시나리오(독일 통일)=대부분의 EC전문가들이 상상하기를 꺼려하는 첫 번째 비극적 시나리오. 그러나 베를린 장벽 철폐 이후 서독 국민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독일 민족은 하나」라는 식의 민족 감정에 비추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나리오로 평가되고 있다. 또 일부 전문가들은 동독 정권의 개혁실천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판단될 경우 동독 국민들의 여론이 갑자기 통일 쪽으로 기울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더구나 독일의 중립화 통일을 통해 서방 결속을 약화시키자는 게 소련의 외교 전략이라고 볼 때 독일재통일에 반대한다는 고르바초프의 거듭된 공언은 계산된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제4시나리오(혼란 상태)=자크 들로르 EC 위원회 위원장이 주저 없이 인용하는 파국적 시나리오로 지역적·민족적 각종 요구가 끝없이 끓어올라 누구도 서로를 통제할 수 없는 혼란상태로 유럽이 빠져들게 된다는 내용.
이러한 위험은 특히 동구쪽에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동구국가들간의 경제적 우대가 사라지고, EC에 대한 각 개별 국가들의 지원 요구가 무질서하게 계속될 경우 EC로서도 모든 요구를 수용하기가 경제적으로 불가능해 질거라는 것. 이렇게 되면 EC도 더 이상 경제적 통합을 추진하기가 어려워지거나,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돼 유럽 전체가 군웅할거의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는 게 이 시나리오의 골자.
◇제5시나리오 (고르바초프의 실패)=가장 비극적 시나리오. 소련에는 브레즈네프 스타일의 정권이 새로 들어서고, 허물어졌던 베를린 장벽이 다시 세워지며, 동구권내의 각종 시위는 강경 진압된다. 얄타 체제의 복원에 맞서 EC 국가들은 우선 대외 정책상의 결속에 주력하게 됨으로써 경제적 통합은 일단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페레스트로이카와 베를린 장벽의 일시적 철폐가 불러 일으켰던 희망 뒤의 절망으로 동·서간의 긴장은 절정에 달하게 되고, 제2의 헝가리 사태나 체코 사태 같은 「피의 제전」이 또 다시 동구권을 휩쓸게 된다.【파리=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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