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첫 단협...이재용 ‘달라진 노조관’ 첫 면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삼성전자 노사가 12일 첫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왼쪽부터 최완우 삼성전자 DS부문 인사팀장(부사장), 김성훈 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 김현석 대표이사, 진윤석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 김만재 한국노총 금속노련 위원장, 이재신 삼성전자구미지부노동조합 위원장, 김항열 삼성전자사무직노동조합 위원장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노사가 12일 첫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왼쪽부터 최완우 삼성전자 DS부문 인사팀장(부사장), 김성훈 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 김현석 대표이사, 진윤석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 김만재 한국노총 금속노련 위원장, 이재신 삼성전자구미지부노동조합 위원장, 김항열 삼성전자사무직노동조합 위원장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노사가 창사 52년 만에 처음으로 단체협약(단협)을 맺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무노조 경영 철폐’를 공식 선언한 지 1년 3개월 만이다. 13일 가석방으로 출소 예정인 이 부회장이 향후 노사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 나갈지도 주목된다.

지난해 5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인사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지난해 5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인사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30여 차례 교섭 끝에 단협 체결  

12일 삼성전자는 자사 노동조합(노조) 공동교섭단과 첫 단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공동교섭단에는 삼성전자 내에 설립된 삼성전자사무직노동조합, 삼성전자구미지부노동조합, 삼성전자노동조합,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등 4개 노조가 참여했다.

단협 체결식은 이날 오후 3시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나노파크에서 열렸다. 사측에선 김현석 대표이사(사장)와 최완우 반도체(DS) 부문 인사팀장(부사장)이 참석했다. 노조 측에선 김만재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위원장과 김항열 삼성노조 공동교섭단 위원장이 나왔다. 삼성전자 각 노조 위원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지난해 11월 삼성전자 노사는 상견례 및 첫 단체교섭을 가졌다. 김상선 기자

지난해 11월 삼성전자 노사는 상견례 및 첫 단체교섭을 가졌다. 김상선 기자

노사화합 공동 선언문도 발표  

이날 삼성전자 노사는 노조 상근자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등 노조 활동 보장 내용과 산업재해 발생 시 처리 절차, 인사제도 개선 등 95개 조항에 합의했다. 양측은 지난해 11월부터 30여 차례 만나 교섭을 벌였고, 지난달 30일 잠정 합의를 이뤘다.

김현석 사장은 “오늘은 삼성전자가 첫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의미 있는 날”이라며 “앞으로 노사가 상호 진정성 있는 소통과 협력을 통해 발전적 미래를 함께 그려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1캠퍼스에서 열린 '2021년 임금협약 체결식'에서 노사 위원들이 행사를 마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종근 삼성디스플레이 인사담당 상무, 김범동 인사팀장, 김정란·이창완 노조 공동위원장. [사진 삼성디스플레이]

지난 7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1캠퍼스에서 열린 '2021년 임금협약 체결식'에서 노사 위원들이 행사를 마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종근 삼성디스플레이 인사담당 상무, 김범동 인사팀장, 김정란·이창완 노조 공동위원장. [사진 삼성디스플레이]

“헌법 관점에서 정상기업으로 탈바꿈”

이번 단협 체결은 삼성의 기업사에 상징적인 사건이다. 앞서 삼성전자 계열사인 삼성디스플레이 노사가 지난 1월 단협을 맺었지만, ‘삼성의 모함’인 삼성전자의 단협 체결이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

익명을 원한 재계 관계자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 3권을 보장하는 헌법 관점에서 보면 삼성전자가 정상 기업으로 탈바꿈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 노조 경영 철폐 선언  

앞서 지난해 5월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 이 자리에서 이 부회장은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눈에 흙이 들어와도 노조는 안 된다”는 고 이병철 창업회장의 유지로 이어져 온 ‘무노조 경영 원칙’을 철폐한 선언이었다.

이후 삼성 경영진과 인사팀장들은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과 김동만 전 한국노총 위원장, 백순환 전 민주노총 비대위원장을 초청해 노사 관계에 대한 강연을 듣는 등 ‘노조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또한 삼성전자는 올해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임직원과의 소통 채널을 ‘노동조합·노사협의회’로 명시했다. 보고서가 처음 발간된 2008년 이후 소통 채널로 노동조합이 명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5월 6일 오후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삼성그룹노동조합연대 관계자들이 임단투 승리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6일 오후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삼성그룹노동조합연대 관계자들이 임단투 승리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사 모두 ‘가보지 않은 길’ 진통 예상  

삼성전자 노사가 의미 있는 첫걸음을 뗐지만, 삼성그룹의 노사 관계가 정립되는 데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노사 모두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의 무노조 폐기 선언 후에도 삼성 내에서는 노조 활동 방해 의혹과 어용 단체 논란 등이 끊이지 않았다.

삼성 계열 노조 10곳이 모인 '삼성연대' 측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 노조를 비판하기 위해 보수단체가 내건 현수막을 사측이 방치하고, 교섭에 불성실하게 응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현장에서 체감하는 불만도 적지 않다. 지난 7월 삼성화재노조가 사원협의체에서 노조로 전환한 삼성화재평사원협의회노조를 상대로 노조 설립 무효 소송을 제기하는 등 '노노 갈등' 양상도 보인다.

삼성화재노동조합이 지난 3월 평사원협의회의 노조 전환을 비판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 삼성화재노조]

삼성화재노동조합이 지난 3월 평사원협의회의 노조 전환을 비판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 삼성화재노조]

MZ세대 불만 팽배한 삼성전자 임금협상도 주목  

지난 9일 한국노총이 성명을 통해 “삼성 계열사 조직들이 끊임없이 임금단체협상 체결을 요구했지만, 계속 질질 끌다 이 부회장 구속이나 가석방 이슈가 터질 때가 돼서야 적당히 하나 들어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하는 것도 삼성 경영진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당장 단협 후 이어질 삼성전자 노사의 임금 협상에도 관심이 쏠린다. 삼성전자 내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를 중심으로 성과금과 연봉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어서다. 한 직원은 내부 익명 게시판에 “우리가 쌀집(쌀로 유명한 이천에 공장이 있는 SK하이닉스를 빗대 표현)보다 못하느냐”는 불만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장진영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장진영 기자

이재용 부회장 노사 관계 입장 밝힐지 주목  

이 부회장이 출소 후 삼성전자 단협을 비롯해 노사 관계에 대한 입장과 달라진 노조관을 밝힐지도 주목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삼성의 노사 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노사의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고 건전한 노사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