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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 뗀 '탄소 중립'…최소 1000조 이상 청구비용은 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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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탄소 중립을 위한 구체적 시나리오가 나오면서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탄소 저감 부담을 직접 떠안은 전통 제조업과 에너지 업계는 적게는 1000조 이상의 비용 청구서를 감당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탄소 중립 최대 수백조 비용

10일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석유화학·철강 업계 탄소 중립에 많게는 수백조원의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화학과 철강은 시멘트와 함께 대표적인 탄소 배출 산업이다.

석유화학 업종 탄소중립 비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석유화학 업종 탄소중립 비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양 의원이 확보한 한국석유화학협회 내부자료 ‘화학산업의 주요 이슈 및 대응 방안’을 살펴보면 2050년 석유화학업계 예상 탄소배출량(1억1006만8000t)을 모두 감축하기 위해 최대 270조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석유화학은 설비뿐 아니라 원료도 모두 바꿔야해 비용 부담이 더 크다. 협회 추산 따르면 석유 원료를 바이오 기반과 신재생 수소 기반 원료로 대체하는 데만 2050년까지 218조원이 들어간다.

철강 탄소중립 비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철강 탄소중립 비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철강 업종은 대표적 탄소 저감 기술인 수소환원제철(석탄이 아닌 수소로 철광석 녹이는 기술) 적용에만 109조4000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 의원이 입수한 한국철강협회 자체 추산 자료에 따르면 수소환원제철 기술 연구개발 비용(2조5000억원), 전기로 등 신설 설비 비용(35조4000억원), 기존 설비 폐쇄 비용(36조원)을 합한 총투자비용만 2050년까지 73조9000원이 필요했다. 여기에 유연탄에서 수소로 바꾸면서 들어가는 생산비용 등이 연간 35조5000억원이 더 든다. 시멘트 업계는 아직 탄소 중립 비용을 산출한 적 없지만, 탄소 배출량이 많은 만큼 석유화학과 철강 업종 못지않은 부담을 떠안을 것으로 보인다.

불확실한 기술…신규 투자 부담

문제는 막대한 비용만이 아니다. 친환경 생산 기술이 이제 개발 단계라 2050년까지 적용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만약 기술 확보에 실패하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탄소배출권을 구매하거나 아예 사업 자체를 이어 가지 못할 수도 있다. 업계에서는“돈을 들여서라도 탄소 중립을 달성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 탄소 중립 위해 필요한 기술로 평가받는 CCUS(이산화탄소 포집·활용 저장 기술)는 국내에서는 아직 기초 연구 단계에 머물고 있다. CCUS는 석유화학·철강·시멘트 공정 과정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공기 중으로방출되는 것을 막고, 이를 모아 따로 저장하거나 다른 물질로 재활용하는 기술이다. 철강업계가 2040년 확보를 목표로 개발 중인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아직 상용화를 시킨 나라가 없다.

양 의원은 “기술도 없는데 탄소 중립 부담만 지고 있는 상황이라 기업 입장에서는 신규 투자 등에 적극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태양광 부지만 서울 4.2배”

에너지 분야 탄소 중립은 막대한 비용 문제는 물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원래 정부는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면서 원자력과 석탄 발전 비중을 줄이는 대신 2030년까지 LNG(액화천연가스) 발전 비중을 30% 이상 유지하겠다고 했다. 신재생에너지가 기후에 따라 수급이 불안정한 만큼 LNG를 기저 전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탈원전 비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탈원전 비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탄중위 3가지 시나리오로 중 가장 보수적인 1안(순 배출 4600만t)으로만 봐도 2050년까지 원자력·석탄·LNG 같은 기존 '기저 전력'의 비중은 20%가 되지 않는다. 가장 급진적인 3안(순배출량 0)으로 하면, 석탄과 LNG는 물론 원전도 일부 수명 남은 발전소를 빼고 모두 폐지해야 한다. 전력 수급 불안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신재생에너지 확대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신재생에너지는 단순 설비뿐 아니라 용지 확보 수급 불안에 따른 에너지저장장치 등 부대 시설 비용이 더 든다. 탄중위는 정확한 에너지 전환 비용을 밝히진 않았다. 하지만 이종호 전 한국수력원자력 기술본부장 분석에 따르면 탈원전 정책을 유지하면 205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설비 투자비 등에만 1394조원에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전 본부장은 “보수적 가정에 근거해 계산한 것으로 실제 비용은 이보다 더 들 수 있다”면서 “설비 감가상각비 등 운영 비용까지 고려하면 국민은 전기요금을 지금보다 2~3배 더 낼 수도 있다”고 했다.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는 “3개 시나리오 중 중간이 2안을 따르더라도 필요한 태양광 부지 면적은 서울시 전체의 약 4.7배에 달한다”며 “탄중위가 정확한 비용 산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 목소리 면밀히 살펴야”

윤순진 2050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순진 2050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탄소 중립이 산업계 미치는 파급력이 막대하지만, 정작 ‘컨트롤 타워’인 탄중위는 업계 목소리를 대변할 사람이 부족하다. 실제 탄중위 명단을 보면 위원 77명 중 산업계는 4명(현대차 부사장·철강협회장·석유화학협회장·시멘트협회장)에 불과하다. 에너지 업계 위원(6명) 가운데는 원전과 석탄·LNG 관련 인사는 아예 빠져있다. 산업·에너지 업계 위원을 모두 합해도 16명에 달하는 시민단체 출신 위원보다 작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탄소 중립은 실제 비용과 탄소 저감 부담을 지는 생산자에게 더 긴급하고 중요한 문제”라며 “규제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업계 목소리를 면밀히 살펴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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