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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나 차질없이 도입" 1주일뒤 펑크…文 백신발언 잔혹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의 그간 백신 관련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백신 공급 차질이 빚어졌거나 이상 신호가 감지됐을 때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진단이 나오면서다. 안정적인 백신 공급을 자신했다가 결과적으로 예측 실패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국민 신뢰는 흔들렸다.

백신 당장 급한데  

대표적인 게 전날(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날 정부는 화이자·모더나 백신의 접종 간격을 4주에서 6주로 늘렸다. 8월 공급받기로 한 모더나 물량이 절반도 못 들어오게 되면서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해외 기업에 휘둘리지 않도록 국산 백신 개발에 더욱 속도를 내고 글로벌 허브 전략을 힘 있게 추진하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국산 백신’ ‘글로벌 허브’ 등이 언급됐다.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당장의 백신 가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산 백신 개발은 이제 임상 3상(SK바이오사이언스)이 허가된 상태다. 2상이 끝나지도 않았다. 국내 우세종인 델타(인도)형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효과도 아직 확실치 않다. 글로벌 허브 전략도 마찬가지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모더나 위탁생산 제품 상용화는 이르면 9월이다. 생산 물량을 국내에 바로 풀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

문재인 대통령 백신 관련 말말말.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문재인 대통령 백신 관련 말말말.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빗나간 도입 예측 

도입 예측도 번번이 빗나갔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수보 회의에서 “전 세계적으로 백신 수급에 불확실성이 있지만 8·9월 접종을 위한 백신 물량은 차질 없이 도입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지난달 27일 모더나와의 화상회의 결과가 근거가 되긴 했으나 ‘8월 물량 반 토막’으로 거짓말이 됐다.

한 달 전도 마찬가지다. 앞서 지난 7월 5일 수보 회의에서는 “이달부터 충분한 백신 물량을 보다 안정적으로 공급받게 될 것이다. 물량을 조기에 확보하기 위한 국제 협력도 지속하고 있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나왔다. 하지만 18일 만에 모더나의 나머지 7월분 물량 196만 회분은 8월로 이월됐다.

권덕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 오른쪽)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 9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청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도입 및 접종계획 등을 발표하는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 합동브리핑에 입장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덕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 오른쪽)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 9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청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도입 및 접종계획 등을 발표하는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 합동브리핑에 입장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찔끔 들어왔는데 "계획 이상 순조롭게 진행"

모더나 백신은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지난해 말 계약이 이뤄졌다. 청와대는 지난해 12월 29일 문 대통령이 모더나 최고경영자(CEO)와 27분간의 화상통화로 2000만 명분(4000만 회분)을 구했다고 밝혔다. 당초 계약추진 물량의 2배다. 도입 시기도 3분기에서 2분기로 앞당겼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실제 2분기에 들어온 물량은 11만2000회분뿐이다. 전체 선구매 물량의 0.28% 수준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6월 7일 제3차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점검 회의에서 “백신 도입과 접종, 예약 등 모든 부분에서 계획 이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하며 마스크를 벗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하며 마스크를 벗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발언엔 없는 보릿고개 

백신 ‘보릿고개’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도 있었다. “백신 개발국이 아니고, 대규모 선 투자를 할 수도 없었던 우리의 형편에, 방역 당국과 전문가들이 우리의 방역 상황에 맞춰 백신 도입과 접종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계획대로 차질없이 접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부분이다. 지난 5월 10일 대통령 취임 4주년 특별연설 중 일부다. 당시 공급 차질로 심각한 보릿고개를 겪을 때다. 전날(9일) 하루 동안 백신 1차 접종자는 전국에 단 3명뿐이었다. 백신 미개발 국가 중 한국보다 접종률이 높은 나라는 수두룩했다. 멕시코 11.2%(5월 10일 1차 접종 기준·아워월드인데이터·이하 같음), 헝가리 45% 등이다. 한국은 7.2%였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D-100일을 하루앞둔 9일 대전 중구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화이자 2차 접종을 받은 고3 수험생과 교직원들이 이상반응 모니터링을 위해 휴식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D-100일을 하루앞둔 9일 대전 중구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화이자 2차 접종을 받은 고3 수험생과 교직원들이 이상반응 모니터링을 위해 휴식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벌써 나왔어야 할 노바백스  

국내 제약사가 기술 이전 계약을 맺은 노바백스는 6월 완제품이 나올 것이라 장담했지만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미국이나 유럽 당국에 긴급사용승인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12일 특별방역점검 회의에서 “이달(4월)부터 노바백스 백신의 국내 생산이 시작되고 상반기 백신 생산에 필요한 원부자재도 확보했다”며 “6월부터 완제품이 출시되고, 3분기까지 2000만 회분이 우리 국민을 위해 공급될 예정”이라고 했다. 노바백스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오는 4분기에나 긴급사용 신청을 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시기 신청한다고 가정해도 10월 이후에나 사용승인이 나오게 된다. 국내 위탁생산분이 나오는 것도 그 이후에나 가능해진다. 정부 목표대로라면 10월쯤 국민 대다수가 1차 접종을 마친 상황일테니 노바백스가 나와도 부스터샷·내년 접종용으로나 사용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의 지적과 관심에 나아진 것도 있다. 9일 시작된 18~49세 예방접종 사전예약은 기존보다 확실히 원활해졌다. 50대의 예약대란 이후 문 대통령이 강하게 질책했고, 민간과 함께 시스템을 손 본 덕분이다. 백신 접종률도 속도를 높여왔다. 국산 치료제가 개발됐고, 우리 백신 프로젝트가 가동됐다.

전문가들은 국정 최고책임자의 발언이 식언(食言)이 돼서는 안된다고 조언한다. 마상혁 경남도의사회 감염병대책위원장은 “백신 수급이 어려운 것은 국민이 다 안다. 솔직하게 털어놓고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며 “그래야 정부를 믿고 따를 수 있다. 불신이 조장되면 정부를 믿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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