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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능라도 영상, 엄중 책임 묻겠다"더니…결국 경고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5월 30~31일 서울에서 개최된 P4G 정상회의 개막 영상에 서울 대신 평양 능라도 영상이 삽입된 것과 관련, 외교부가 준비기획단 관계자 3명에게 특별한 법적 징계 없이 경고 처분만 내렸다. 앞서 외교부는 "기획단이 임무를 방기했다"며 "징계위를 통해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5월 30~31일 전 세계에 생중계된 P4G 정상회의 개막식 영상 캡쳐. 서울이 아닌 평양 대동강 능라도를 시작으로 평양, 한반도, 지구로 줌아웃된다.

지난 5월 30~31일 전 세계에 생중계된 P4G 정상회의 개막식 영상 캡쳐. 서울이 아닌 평양 대동강 능라도를 시작으로 평양, 한반도, 지구로 줌아웃된다.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외교부는 P4G 영상 사고 관련 징계 결과와 관련해 고위 공무원인 준비기획단장에게 서면 경고를 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단장에 대해 서면 경고에 그친 이유에 대해 "대상자가 7월 1일 자로 퇴직을 하게 돼 징계의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논란 당시엔 "엄중 책임" #외주 업체 경찰 수사 진행 중

환경부에서 외교부로 파견 근무를 왔던 심의관급 부단장에게는 원소속 부처인 환경부에 조사 결과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서기관급인 실무자에게는 불문 경고를 내렸다. 외교부는 "최초의 비대면 정상회의를 동영상 논란 외에는 문제없이 개최한 데 기여한 부분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공무원 징계령은 공무원에 대한 징계를 중징계(파면, 해임, 강등 또는 정직)과 경징계(감봉 또는 견책)로 나눈다. 단장에게 내린 서면 경고나 실무자에게 내린 불문 경고는 인사기록에는 남지만, 법적 징계에 해당하지 않는다. 특히 단장의 경우 이미 퇴임해 인사상 조치로서도 의미가 없다.

앞서 외교부는 지난 6월 18일 P4G 영상 사고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준비기획단의 관리 책임 방기를 인정했다. "민간 행사 업체에 모든 것을 위임해 중대 귀책사유를 야기했다"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경고 처분에 그치면서 논란이 거셀 때만 "엄중 책임"을 외치다 여론이 가라앉자 솜방망이 처분을 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이 아닌 평양인 것처럼 전세계에 방영된 외교 참사라는 점을 고려해도 처분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것이다.

또 행사 준비의 총책임자인 단장의 경우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어 징계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본 외교부의 판단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사안의 내용이 복잡하지도 않은데 자체 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18일이나 걸렸고(6월 18일), 이후로도 단장의 퇴임일(7월 1일)까지는 열흘 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교부 차원의 징계위도 그가 퇴임한 이후에야 열렸다.

특히 법령상 고위공무원은 외교부 자체 징계위가 아닌 중앙징계위에 회부해야 하지만, 외교부는 단장에 대한 중앙징계위 의결을 요구하는 절차도 생략했다.

이런 대응은 2019년 한ㆍ미 정상 간 통화기밀 유출 사건과는 확연히 비교된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외교부는 강효상 전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미국 대통령 방한과 관련한 내용을 알려준 외교관에 대해 22일 만에 징계위원회를 열고 파면 처분을 내렸다. 연루 고위 공무원도 즉시 중앙징계위에 회부했다.
당시엔 청와대까지 나서 "외교 관례에 어긋난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이번 P4G 영상 사고와 관련해선 청와대 입장 발표는 없었다.

조태용 의원은 "외교부 장관이 직접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는데, 결과가 이 정도로 미흡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청와대를 포함한 객관적 경위 파악과 이에 따른 책임 규명이 명확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재발 방지 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5월 30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P4G 개막식에서 연설하는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지난 5월 30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P4G 개막식에서 연설하는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한편 논란의 평양 영상을 직접 구매해 개막식 영상에 삽입한 외주 업체 담당자는 외교부 조사에서 "파일명이 너무 길어서 '평양(Pyongyang)'이라는 글자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개막식 영상은 외교부 P4G 정상회의 준비기획단 → 행사 준비 대행 A사 → 개막식 영상 제작만 맡은 B사  → 이 중 일부 장면만 담당한 C사로 넘어가 제작됐다. 세 단계에 걸쳐 외주를 준 셈이다. 문제는 C사 직원이 영상 구매 사이트에서 개막식에 쓸만한 영상을 찾다 하필 평양 영상을 골라 집어넣으면서 발생했다.

그런데 해당 사이트의 영상 원본 제목에는 버젓이 ‘북한(North Korea)’과 ‘평양(Pyongyang)’이 명시돼 있다. 정확히는 'Zooming in from earth orbit to Pyongyang North Korea in East Asia'(지구 궤도에서 동아시아의 북한 평양으로 확대)였다.

C사 직원이 사용한 영상 구매 사이트에 게시돼 있는 '능라도 영상' 원본.

C사 직원이 사용한 영상 구매 사이트에 게시돼 있는 '능라도 영상' 원본.

그런데도 담당 직원은 "영상을 찾을 때는 제목 자체를 보지 않았다. 나중에 후회했다."(6월 18일 외교부 조사 결과 브리핑)고 말하거나, "파일명이 너무 길어서 확인 못 했다"(8일 국민의힘 조태용 의원실에 대한 외교부 답변)고 해명했다.

외교부는 여전히 "파일명을 보지 못했다는 주장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재 외교부 의뢰로 행사 준비 대행사 관계자들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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