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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한미훈련 진행하되 한국군 축소…北에 대화 명분 줄듯

중앙일보

입력

국방부가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사실상 취소를 요구한 하반기 연합훈련과 관련, 시기와 규모, 방식 등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면서 미국과 협의 중이라고 밝힌 지난 2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 모습. 연합뉴스

국방부가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사실상 취소를 요구한 하반기 연합훈련과 관련, 시기와 규모, 방식 등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면서 미국과 협의 중이라고 밝힌 지난 2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오는 16~26일 진행될 예정인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연기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대신 미군은 그대로 참여하고 한국군 규모만 축소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검토하고 있다. 규모 축소의 명분으로는 북한 변수가 아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내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6일 “한·미연합훈련의 역사를 보면 역대 어느 정부든 한·미 동맹이 우선이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한·미 간 협의한다’고 청와대가 밝혔듯이 한·미연합훈련에서 북한 변수는 고려할 우선 순위에서 상대적으로 뒤쪽에 있다”며 훈련 연기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대규모 훈련을 일주일여 앞두고 갑자기 미루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우리 군이 미국이 제공한 얀센 백신을 접종했더라도 지금은 변이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있다. 코로나19의 상황을 고려하면 그대로 진행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훈련 축소 가능성은 있지 않겠나”라며 훈련 축소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군은 계획대로 참여하고 한국군 참여 규모만 줄이는 쪽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연합훈련은 하되 규모를 일부 축소 진행해 북한에 대화의 명분은 남기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군 주요 지휘관 보고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군 주요 지휘관 보고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미연합훈련은 한·미관계와 남북관계가 함께 응축된 고민거리다. 한·미 관계만 고려하면 훈련은 그대로 진행하는 게 유리하다. 지난 5월 열린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합동 군사 준비태세 유지의 중요성을 공유하며” 등의 문구가 담겼다.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도 지난 5월 미 의회 청문회에서 “정기적인 대규모 훈련은 연합 방위 태세 구축에 필수적”이라고 했다.

반면 남북관계만 따진다면 한·미연합훈련은 부담스러운 선택이다. 특히 남북 통신선 복원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가 만들어진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1일 담화에서 연합훈련을 두고 “북남(남북) 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에 전시작전통제권 이양과 코로나19 상황, 국군의 훈련 경험 기회 등이 연합훈련 문제와 얽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군 주요지휘관 보고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군 주요지휘관 보고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복잡한 상황에 대한 문 대통령의 고민이 드러난 장면이 지난 4일 군 주요지휘관 보고다. 서욱 국방부 장관, 원인철 합동참모본부 의장 등이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에게 국방 현안에 대해 보고하는 자리였다. 보통 문 대통령 공식 일정은 전날 오후에 출입 기자들에게 공지되지만, 당시 일정은 이례적으로 시작 30여분 전에 갑작스럽게 공지됐다. 서 장관은 “코로나 상황 등 현실적 여건을 감안하여 방역당국 및 미 측과 협의 중에 있다”고 보고했고, 문 대통령은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신중하게 협의하라”고 지시했다.

신성범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연합훈련 연기에 찬성하는 국가정보원이나 통일부가 아닌, 연합훈련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국방부만 갑자기 불러 보고를 받은 것 자체가 메시지”라며 “문 대통령은 ‘신중하게 협의하라’고 말함으로써 북한에 ‘난 최선을 다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신 전 의원은 “결국 코로나19를 명분으로 훈련을 축소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북한 눈치보기’라는 비판은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남북 통신선 복원과 연합훈련은 등가성이 성립하지 않는 문제인데, 북한의 말에 문 대통령이 흔들리며 원칙을 깨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훈련을 축소해 북한에 대화의 명분을 남겨둔 뒤에 남북이 9월 이후 대화 재개를 시도할 것”으로 전망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소속 의원 72명이 연합훈련 연기론을 주장했던 더불어민주당은 지도부가 연기론과 명확하게 선을 그으며 논란이 일단은 정리되는 분위기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한·미합동훈련은 대규모 야외 기동병력이 동원되지 않는 연합지휘소 훈련이자 전시작전권 회수 위해 불가피한 절차”라고 말했다. 송 대표는 전날에 이어 또다시 연기 불가론을 말한 것이다.

이소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송 대표 의견에 대해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별다른 이견이 제기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대변인은 문희상 전 국회의장 등이 참석한 당 상임고문단 회의가 끝난 뒤에도 “한·미 간 신뢰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할 때 연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중론이었다”고 전했다.

민주당 한 의원은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 이후에 우리 당이 갑자기 ‘훈련 연기론’을 들고 나온 것 자체가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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