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을들의 ‘갑질’과 평범한 인간의 본질

중앙선데이

입력 2021.08.0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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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8호 31면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그곳에 을이 아닌 사람은 없었다. 다만 그 노동의 현장엔 ‘을’ ‘을중을’ ‘을중을의 을’처럼 가파르게 서열화된 을이 있었다는 걸 짐작하게 할 뿐이다.

서울대 청소 노동자 돌연사 논란에
직장 괴롭힘으로 판정된 을의 갑질
‘사람’을 배려 않는 노동의 현장엔
‘악의 없는 악행’이 넘치고 있었다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의 사망’. 이 일은 지난 6월 일어났다. 곧바로 ‘갑질과 과로로 인한 사망’이라는 문제가 제기됐고, 민주노총이 서울대 측에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갑질’의 원천으로 관리팀장이 지목됐다. 청소노동자를 대상으로 영어와 한문 시험을 보고, 드레스 코드를 지정했다는 등의 내용이 알려졌다. 그리고 한 달이 조금 넘은 지난 주말에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고 판정했고, 서울대 총장은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사안의 개요는 이렇게 몇 줄로 정리된다. 하지만 이 사건이 남긴 메시지는 간단하게 정리하기 힘들다.

‘서울대 청소노동자’. 우리는 그들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수혜자로 알고 있었다. 당연히 노동 현장에서 신분은 상승하고, 환경은 개선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 알게 된 건 정규직도 다 같은 정규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서울대의 한 보직 교수는 “이번 사건의 핵심은 노-노 갈등이고, 정규 직원이라도 법인직원, 자체직원 등 다양한 체계가 있고, 그들의 이해관계가 모두 달라 여러 갈등이 불거진다”고 했다.

실제로 민주노총이 개입한 후 일부 서울대 직원은 “나도 민주노총 소속인데 왜 청소노동자들 편만 드느냐”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 악의 축으로 지목됐던 관리팀장도 노조원이었고, 그도 이 학교에서 ‘을의 갑’쯤 되는 법인직원이 아닌 자체직원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언론을 통해 자신의 행위가 청소노동자들이 무시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선의’였음을 강조했다. “너도나도 피해자 코스프레가 역겹다”는 SNS로 빈축을 산 서울대 학생처장도 평소 노동 운동을 적대시하지 않았고 노동자의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그를 아는 동료 교수는 말했다.

이처럼 이 현장에 ‘악의’는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악행’은 존재했다. 시험을 못 봐 핀잔을 받고 눈물을 흘린 노동자의 모멸감, 내부 논리에 갇혀 ‘피해자 코스프레’ ‘역겹다’ 등의 모멸적 단어를 날리는 공감의 부재…. 한데 이 악행들은  악인이 저지른 게 아니다. 입장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맞지 않으면 사람이 타인에게 얼마나 가혹하고 무례할 수 있는지 드러내는 ‘평범한 인간의 본질’을 보여준 것뿐이다.

선데이 칼럼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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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던 사람이 급성심근경색으로 돌연 사망한 원인으로 추정되는 ‘과도한 노동’ 역시 평범한 인간의 본질이 저지른 일인지 모른다. 이번 기숙사 노동자가 일하는 모습을 담은 CCTV의 영상을 보면, 엘리베이터도 없는 기숙사에서 쓰레기가 가득 담긴 커다란 쓰레기봉투들을 들고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이 있다. 이 모습에 왜 기숙사에선 각자의 쓰레기를 지정된 분리수거장에 분리수거하도록 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청소와 소독 일이 늘어난 판국이다. 버스와 지하철에서도 손잡이까지 소독제를 뿌리고 닦는 영상이 돌아갈 정도다. 청소하는 사람 수를 늘려도 일거리가 과거보다 확 늘어났을 거라는 건 자연스러운 추론이다. 그런데 노동자 수를 늘렸다는 말도 임금을 더 올렸다는 말도 없다.

내 눈에 가장 크게 보인 건, 실은 ‘갑질’보다 한 사람이 과로사에 이른 노동의 품질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그 사실이었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팔아서 먹고산다. 만원을 받으면 만원어치 일을 해야 한다. 만원을 주면서 2만원어치 노동을 요구하는 건 ‘착취’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동 현장에선 그런 의식이 별로 없다. 만원을 주고 2만원어치의 효과를 얻으면 효율이라고 한다. 기계가 아닌 사람의 노동 현장에서도 똑같은 효율을 기대한다. 그리고 ‘을’인 중간관리자는 ‘을중을’인 더 약한 노동자들을 동원해 효율을 올린다. 진짜 갑은 숨어버리고, 을의 갑질이 먹이사슬처럼 연결되어 착취와 남용, 괴롭힘이 이어진다.

장자의 대종사 편에는 이런 우화가 있다. “물이 말라버린 연못에서 물고기들은 자신이 머금은 물을 옆에 있는 물고기들에 토해주며 조금이라도 버티려고 한다. 가상한 일이나 물이 풍부한 연못에서 서로 모른 척하며 지내는 것에 비할 바인가.”

안타까운 건 관리팀장의 ‘선의’가 옷차림을 바꿔주는 게 아니라 ‘물이 풍부한 환경’을 만드는 일, 예를 들어 기숙사 구성원이 책임지는 분리수거 시스템을 도입하고 노동 강도에 따라 사람을 더 배치하는 등 ‘사람’을 위한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평범한 을들은 시스템에 도전할 엄두를 못 낸다. 그래서 그런 일은 영화 주인공이나 영웅들이 한다. 입장 바꿔 생각할 줄만 알아도 좋은 사람 축에 든다. 그러니 불가능한 것을 포기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그를 ‘악인’이라 낙인 찍을 수는 없다. 누구나 반추해 보면, 아마 대부분은 그렇게 살 거다. 두려운 건 그렇게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타자에 대한 갑질로 변질되고,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더 두려운 건 앞으로도 거대한 ‘갑’은 숨어 있고, 을끼리 갑질하며 이 부조리한 시스템의 영속에 봉사하는 일은 지속될 거라는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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