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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 금·은·동 모두 신었다…나이키 뜻밖의 '신발 도핑'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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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달 30일 도쿄올림픽 육상 종목 경기 시작과 함께 떠오른 골칫거리가 하나 있다. 바로 선수들의 운동화다. 특히 ‘탄소 섬유판’을 핵심 소재로 진화를 거듭한 나이키 운동화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3일 도쿄 올림픽 남자 400m 허들 결선에서 노르웨이의 카르스텐 바르홀름(왼쪽)과 미국의 라이 벤자민이 1, 2위를 다투며 뛰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3일 도쿄 올림픽 남자 400m 허들 결선에서 노르웨이의 카르스텐 바르홀름(왼쪽)과 미국의 라이 벤자민이 1, 2위를 다투며 뛰고 있다. [AP=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은 날로 진화하는 운동화 기술이 올해도 어김없이 ‘기술 도핑(technology doping)’에 논란에 불을 붙였다고 보도했다. 기술 도핑이란 스포츠에서 도구나 장비의 영향을 받아 경기력이 향상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에 따르면 올해는 유독 나이키 ‘줌X 드래곤 플라이’와 ‘줌X 베이퍼 플라이’가 주목받고 있다. 육상 첫 경기였던 육상 남자 1만m 금·은·동메달리스트부터 여자 100m 금메달리스트, 남자 100m 금·은메달리스트, 그리고 남자 400m 허들 은메달리스트까지 이 신발을 신은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두 제품은 밑창의 탄력을 끌어올린 나이키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고탄성 폼으로 만든 중창(밑창과 깔창 사이)과 창 중간에 끼운 탄소 섬유판이 핵심 기술이다.

지난달 30일 도쿄올림픽 남자 육상 1만m에서 우승한 셀레몬 바레가(에디오피아)가 나이키의 '줌X 드래곤 플라이'로 추정되는 신발을 신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30일 도쿄올림픽 남자 육상 1만m에서 우승한 셀레몬 바레가(에디오피아)가 나이키의 '줌X 드래곤 플라이'로 추정되는 신발을 신고 있다. [AP=연합뉴스]

탄소 섬유판은 반발 탄성을 높여 선수가 지면을 차며 달려나갈 때 더 적은 에너지로, 추진력을 낼 수 있게 한다. 특히 줌X 시리즈는 고탄성 폼 소재로 폴리에티르블록아미드(PEBA)을 사용해 기존 제품보다 탄성을 더 높였다. 이 기술을 경기 트랙과 운동화 간 마찰력을 높이기 위해 징을 박은 ‘스파이크’ 운동화에 덧입히면서 ‘슈퍼 스파이크’로 진화했다.

탄성력에 주력한 운동화 기술은 지난 2016년 나이키가 처음으로 선보였다. 과거 바닥 접지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둔 운동화 기술의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지난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메이저 마라톤 대회 우승자 12명 중 8명, 2019년 도쿄 마라톤·보스턴 마라톤에서는 우승자 6명 중 5명이 이 모두 베이퍼 플라이를 착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같은 운동화를 신지 않은 선수들에게는 불공정 경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2016년 리우올림픽 때 일반스파이크를 신고 뛰었던 '단거리 황제' 우사인 볼트(자메이카)도 줄곧 반대 입장이다. 그는 지난달 2일 기능성 운동화가 형평성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연맹에 조처를 요구했다. 이날 육상 남자 400m 허들에서 금메달을 딴 카르스텐 바르홀름(노르웨이)도  “다른 선수들이 왜 신발 안에 무언가를 넣는지 모르겠다. 단거리 선수 운동화에 탄성 소재를 넣는 건 육상의 신뢰를 빼앗는 일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케냐 장거리 육상선수 엘리엇 킵초게가 2019년 10월 비엔나 마라톤 때 신었던 나이키의 '줌X 베이퍼플라이 넥스트%' 러닝화. [EPA=연합뉴스]

케냐 장거리 육상선수 엘리엇 킵초게가 2019년 10월 비엔나 마라톤 때 신었던 나이키의 '줌X 베이퍼플라이 넥스트%' 러닝화. [EPA=연합뉴스]

반면 인류 최초로 마라톤 풀코스를 2시간 이내에 완주한 엘리우드 킵초게(케냐)는 “나는 열심히 훈련하고, 기술의 도움도 받는다. 스포츠 선수도 점점 발전하는 기술과 발맞출 필요가 있다”며 첨단 기술을 장착한 운동화에 호의적인 입장을 내놨다.

논란이 계속되자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지난해 2월 국제 경기에 착용할 수 있는 신발 규정을 발표했다. 밑창 두께를 800m 미만 단거리화 20mm이하, 중장거리화 25mm 이하, 도로화 40mm 이하로 하고, 탄소 섬유판은 1장만 넣으라는 규정이다. 영국 브라이튼 대학의 야니스 피트실라디스 교수는 “같은 신발을 신어도 선수마다 경기력 향상에는 차이가 생기게 마련”이라면서도 “하지만 슈퍼 스파이크를 신을 수 있는 선수와 여건상 신지 못하는 선수의 형평성을 위해 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나이키는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밑창 두께가 0.5mm 낮은 신제품을 출시해 IAAF의 규정을 비켜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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