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미·중 대결을 보는 어느 한국인의 불안감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31 00:30

업데이트 2021.07.31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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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호 31면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하버드대 방문교수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하버드대 방문교수

편히 쉬어야 될 주말 아침, ‘불안감’ 운운해서 좀 미안한 일이다. 복잡한 서울을 떠나 미국에 와서 보니, 우리가 닥친 현실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 바깥세상 변화의 심각성에 비해 우리가 너무 태평스러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 진행 중인 기존 패권국 미국과 신흥 도전국 중국 간의 거대한 한판 대결의 결과는 한반도의 운명과 우리들의 삶을 뒤흔들 것이다.

미국의 국제 리더십 회복 불안
중국 패권 때는 중화질서 강요
한·일 고립된 섬으로 남을 우려
일본 공격보다 외교쇄신 힘써야

요즈음 미국 언론의 큰 뉴스들은, 지난 1월 의사당 난입사건 청문회, 인프라투자예산법안 통과문제, 코로나 백신 접종 늘리기 등이다. 각각, 미국이 심각한 정치적 분열을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다질 수 있을 것이냐, 장기적 국력 상승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냐, 정상 생활로 신속히 돌아가 경제와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냐에 관한 중요 현안들이다. 또 미국이 민주국가의 대표주자로 국제적 리더십을 강화하고 룰(rule)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필수 과제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만큼이나 야심찬 개혁을 추구하려는 바이든 대통령을 의회가 충분히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상원만 하더라도 50대 50 의석분포에 상원 의장인 부통령 1표가 더해 간신히 민주당 우위가 유지되고 있다. 만일 공화당의 비협조로 바이든 정부 개혁정책들이 실패하고 내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하면,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 회복은 힘들어질 것이다. 그 경우, 세계는 각자도생의 혼란기로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선데이 칼럼 7/31

선데이 칼럼 7/31

물론 미국인들은 미국 정치체제가 복원력이 튼튼하다고 자신한다. 실제로 닉슨 대통령의 사임과 같은 큰 사건 이후에도 미국 민주주의는 잘 유지되어왔다. 그런데 그때는 지금처럼 미국정치가 극심하게 분열돼 있지는 않았다. 트럼프 4년 이후, 심지어 마스크 쓰고 백신 맞는 것까지도 정치화되어버린 이 분열상을 바이든 대통령이 잘 극복하고 대외적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을까? 그것이 아슬아슬하고, 미국이 불안한 이유다. 누가 뭐래도 한국은 지난 70년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서 성공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둘째, 만일 중국이 정말로 미국을 대체하게 된다면, 그다음 올 중국 주도의 세계질서는 어떤 모습일까? 2017년 중국공산당 19차 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중국은 독립을 지켜가면서 발전의 속도를 내고자 하는 다른 나라와 민족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공한다”고 연설했다. 미국이나 서구의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이나 정치적 분열로 실패했고 중국의 정치체제와 발전 방식, 이른바 중국모델이 훨씬 더 우월하다는 것이 판명됐다는 것이다. 물론 그 중국모델의 핵심은 권위주의다. 중국은 그동안 일대일로나 다양한 방식으로 중국모델 수출에 힘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개도국 관료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AI나 안면인식기술 등, 하이테크를 활용해 정치적 통제와 감시를 할 수 있는지 수시로 교육해왔다.

그러한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는 위계적인 질서일 것이다. 한마디로 과거 19세기 이전 중화질서처럼 중심에 중국이 있고 주변국들은 변방으로, 상하 자리매김이 분명해질 것이다. 민주주의 패권국들과 달리 권위주의 패권국은 상호 협의나 소프트파워보다 직접적인 위협을 통해서 상대국을 강요하는 경향이 클 것이고 내정간섭을 통해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흔드는 일도 자주 벌어질 것이다. 그러한 징조를 우리는 중국 지도층 인사들의 발언이나 전랑(戰狼)외교에서 목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의 국민들은 이미 산소처럼 민주주의를 마시면서 살게 된지 오래다. 최근의 반중 정서가 보여주듯 수평적 외교 관계에 대한 갈망도 큰 나라다. 또한 중국이 주도하는 패권 질서에서 한국과 일본은 지정학적으로도 고립된 섬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향배가 우리에게는 불안한 것이다.

셋째, 미·중 대결이 미칠 여파의 심각성을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얼마나 절실히 체감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판이 이처럼 돌아가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외교가 일본과의 대결이라는 마법에 걸려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6~7년 전 어느 외교관은 사석에서 한국외교 에너지의 70%가 일본과 싸우는 데 소비되는 것 같다고 자조적으로 말한 적이 있다. 외교의 큰 그림 속에서 격변하는 미래에 대비한 방략을 집행하는데 국가적 에너지가 쓰여지지 않고 방전되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원죄는 일본에게 있다. 그래서 국내 피해당사자들을 위해 일본에게 할 말은 당당히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방식은 의연하고, 국제기준에 부합하고, 전략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도덕적으로나 여론 상으로 압도하고 귀중한 정치자산과 에너지를 아껴 더 중요한 미래 어젠다에 투자할 수 있다.

차라리 일본과의 과열된 대결에 쏟아부은 에너지를 대미외교를 전면적으로 쇄신하는데 썼다면 어땠을까? 이스라엘이나 대만의 대미외교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미국을 한반도 평화정착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말이다. 아니면 인도와 같은 잠재적 대국과의 협력에 투자하여 지나치게 높은 대중 경제의존도도 낮추고 미·중 대결의 부정적 파급효과를 상쇄하려 노력했다면? 마지막으로 우리 스스로의 모습이 불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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