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아니어도 드라마 있는데…방송사 '몰빵 중계' 속사정

중앙일보

입력 2021.07.30 19:01

업데이트 2021.07.30 22:50

배드민턴 남자단식 허광희가 세계랭킹 1위 겐토 모모타를 잡고 16강에 진출했다. 이 경기는 국내에서 KBS 홈페이지의 온라인 채널 '도쿄올림픽3'에서만 중계진 없이 라이브 송출됐지만, 지상파 3사의 중계가 동시간대의 펜싱에 집중되면서 TV에서는 볼 수 없었다. AP=연합뉴스

배드민턴 남자단식 허광희가 세계랭킹 1위 겐토 모모타를 잡고 16강에 진출했다. 이 경기는 국내에서 KBS 홈페이지의 온라인 채널 '도쿄올림픽3'에서만 중계진 없이 라이브 송출됐지만, 지상파 3사의 중계가 동시간대의 펜싱에 집중되면서 TV에서는 볼 수 없었다. AP=연합뉴스

메달이 아니어도 드라마는 있다. 세계랭킹 38위가 세계랭킹 1위를 2:0으로 이긴 배드민턴 남자단식 예선, 국기인 태권도 이대훈 선수 은퇴 전 마지막 경기인 태권도 동메달 결정전, 한명목 선수가 4위로 마무리한 역도 동메달 결정전, 여서정 선수가 결승 진출 티켓을 따낸 여자 기계체조 예선전….

5년간 땀흘린 결과를 세계무대에 선보인 경기였지만 이들 모두 우리나라의 TV 화면에서는 볼 수 없었다. 지상파 3사의 중계가 펜싱과 축구에 쏠린 탓이다.

이대훈 선수가 25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A홀 경기장에서 열린 68kg이하급 남자태권도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한 후 상대선수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대훈선수의 은퇴 전 마지막 경기였던 동메달 결정전과 앞선 패자부활전 모두 TV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같은 시간 지상파 3사는 모두 축구 중계를 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V

이대훈 선수가 25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A홀 경기장에서 열린 68kg이하급 남자태권도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한 후 상대선수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대훈선수의 은퇴 전 마지막 경기였던 동메달 결정전과 앞선 패자부활전 모두 TV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같은 시간 지상파 3사는 모두 축구 중계를 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V

야구 일색 중계에 지쳐… NHK 링크까지 찾아보는 사람들

29일 오후 7시 50분 진행된 기계체조 여자종합결선 라이브 영상이 송출되고 있는 MBC '도쿄올림픽 라이브' 채널. MBC 캡쳐

29일 오후 7시 50분 진행된 기계체조 여자종합결선 라이브 영상이 송출되고 있는 MBC '도쿄올림픽 라이브' 채널. MBC 캡쳐

대회 6일차였던 29일 오후 7시 50분에 진행된 기계체조 여자종합결선 경기도 지상파 3사 중계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지상파 중계는 일제히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야구 오프닝라운드 B조 경기를 내보냈다.

그러나 채널을 돌려도 똑같은 3사의 야구중계에 질린 네티즌은 다른 경기를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기계체조도 방송해달라” “결승전도 방송 안해주면 어떡하냐” 는 댓글이 끊임없이 올라오자, 일부 시청자들은 KBS와 MBC, 심지어 NHK의 라이브 영상 링크를 댓글로 달며 “여기서 영상을 볼 수 있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이들이 올린 링크는 중계 없이 영상만 송출되는 온라인 채널이다.

29일 저녁 지상파 3사는 모두 야구 중계로 화면을 돌렸다. 최종 21위를 차지한 이윤서 선수가 출전한 여자 기계체조 결선은 온라인 영상으로만 볼 수 있었다. 야구 중계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KBS, MBC, 심지어 일본의 공영방송 NHK 라이브 영상 링크까지 공유하며 기계체조를 볼 수 있는 방법을 나눴다. 네이버 캡쳐

29일 저녁 지상파 3사는 모두 야구 중계로 화면을 돌렸다. 최종 21위를 차지한 이윤서 선수가 출전한 여자 기계체조 결선은 온라인 영상으로만 볼 수 있었다. 야구 중계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KBS, MBC, 심지어 일본의 공영방송 NHK 라이브 영상 링크까지 공유하며 기계체조를 볼 수 있는 방법을 나눴다. 네이버 캡쳐

매 번 반복되는 '몰빵 중계'

태권도 이대훈 선수가 은퇴 전 마지막 동메달을 딴 남자 68kg급 경기도 수영과 축구에 밀려 TV에서 볼 수 없었다. 네이버 캡쳐

태권도 이대훈 선수가 은퇴 전 마지막 동메달을 딴 남자 68kg급 경기도 수영과 축구에 밀려 TV에서 볼 수 없었다. 네이버 캡쳐

지상파의 올림픽 ‘몰빵 중계’는 국제 스포츠 경기 때마다 고질적으로 반복되던 문제다. 특히 하계올림픽은 동계올림픽보다 종목 수도 많고 참가인원도 많아, 지상파가 모든 경기를 보여주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번 도쿄올림픽에는 33개 종목, 전 세계 205개국에서 1만 1000여명이 참여했고 우리나라 선수만 해도 232명이 출전했다. 지상파 3사 모두 스포츠 전문인 자회사 채널이 있지만, 케이블 채널에서도 특정 종목의 편중 중계 문제는 마찬가지다. 28일 밤 배드민턴 남자단식 허광희 선수의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지상파 3사는 모두 펜싱 사브르 남자 단체 결승전을, 방송 3사의 케이블 스포츠 채널은 모두 남자축구 A조 일본-프랑스 경기를 중계했다. MBC 측는 “축구 A조 순위에 따라 8강에서 한국팀이 상대해야 할 팀이 달라지기 때문에 중요한 경기라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KBS는 KBS1, KBS2 두 채널에서 커버하지 못하는 다른 종목의 경기를 온라인 별도 채널 '도쿄올림픽' 6개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다. 중계나 해설은 없지만 현장의 영상과 소리를 그대로 볼 수 있다. KBS 홈페이지 캡쳐

KBS는 KBS1, KBS2 두 채널에서 커버하지 못하는 다른 종목의 경기를 온라인 별도 채널 '도쿄올림픽' 6개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다. 중계나 해설은 없지만 현장의 영상과 소리를 그대로 볼 수 있다. KBS 홈페이지 캡쳐

그나마 KBS와 MBC는 TV로 송출하는 중계화면 외에 온라인으로도 경기 영상을 내보내고 있다. KBS는 홈페이지에 '도쿄올림픽' 채널 6개, MBC는 '도쿄올림픽 라이브' 채널 2개를 통해 TV 중계로 커버하지 못하는 경기의 라이브 영상을 중계 없이 그대로 내보낸다. 그러나 TV 중계를 하는 주요 경기 외의 다른 경기 일정은 홍보도 부족하고, 별도 채널을 통해 실시간 영상을 볼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늑장 올림픽, 이미 광고 다 팔았는데…

'늑장 올림픽'으로 인해 3사가 조율해 중계를 배분하지 못한 것도 원인이다. 코로나19 확산세로 개최 여부도 불투명하던 도쿄올림픽이 '무관중 개최' 결론을 내린 게 지난 8일이다. 방송통신위원회도 14일에야 과다한 중복·동시 편성으로 시청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지 않도록 지상파 3사에 ‘순차 방송’을 권고했다. 하지만 방송사들이 이미 축구·야구 시간대를 중심으로 광고 판매를 마친 상황이라 이미 편성된 축구·야구 방송 시간을 조율하지 못했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시청률이 높은 축구나 야구가 중계가 포함된 광고는 1억 넘게 책정되는데, 중계료가 워낙 높아져서 광고비가 높은 종목을 과감하게 빼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이에 방통위는 순차편성 권고가 늦은 게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공식 권고 이전에 방송협회를 통해서 의견조율은 계속 해왔고, 이전에는 더 촉박하게 권고안이 나온 적도 있었다"며 "편성 조율도 어디까지나 '권고'기 때문에, 방송사들의 협의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한 지상파 관계자는 "올림픽 개최가 불확실해서 3사가 조율할 여지가 없었던 면도 있지만, 최소 100일, 보통 6개월 전부터 준비하는 올림픽 중계방송에 대한 지침을 빨리 줘야한다"고 반박했다.

2008, 2012년에도 똑같이 지적했는데… 2021년도 그대로

반복되는 문제점은 방통위 보고서로도 지적돼왔다. 2008, 2012년 방송통신위원회의 조사연구지원사업으로 '올림픽 중계방송 편성 분석' 보고서 펴낸 경기대 윤성옥 교수는 "주요 종목, 국민 관심도가 높은 종목을 중계하는 것도 중요하고, 올림픽 정신을 생각한다면 다양한 종목과 선수를 다뤄주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며 "중계권료가 워낙 비싸서 광고 판매가 중요해진 상황도 이해는 하지만, 방송의 공적 책무를 생각한다면 대승적으로 지상파가 협의해서 균형적 편성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가 작성한 2008년과 2012년 올림픽 편성을 분석한 보고서는 '지상파 3사가 똑같은 종목의 똑같은 선수의 경기를 동시에 중계하는 것은 시청자들의 볼 권리 침해' '국내 지상파방송의 올림픽 중계방송은 채널간 차별성이 없는 게 문제' '중복투자로 인한 지상파 방송 동반하락보다는 분산투자로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썼다.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비해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중복편성 문제가 상당히 개선됐는데, 방송법 76조 5 '중계방송 순차편성 권고' 조항이 처음으로 적용된 것으로 보고서는 분석했다. 2012년에는 주요 종목 순차편성 외에도 KBS(양궁·탁구), MBC(역도), SBS(사격가 일부 종목을 독점중계하면서 겹치기 중계가 큰 폭으로 줄었고, 2016년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중계가 진행됐다. 윤 교수는 "이번에 3사가 역할분담을 하지 않아서 똑같은 중복편성 문제가 또 불거진 건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똑같은 문제가 13년째 지적됐지만 뚜렷한 개선은 없다. 그나마 2008년, 2012년 이어졌던 '올림픽 편성 분석' 보고서도 이후에는 작성되지 않았다. 윤 교수는 "해외에서는 올림픽마다 편성의 문제점을 분석해 누적하고, 이후의 방송을 개선하는데 쓰는데 국내 방송은 분석과 아카이빙이 부족해 방통위가 개입할 근거도 부족하다"며 "국민들이 다양한 방송을 보고 싶어하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편성의 균형이 더 중요해지고 있고,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인 분석을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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