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서 굴린 '수소트럭' 법정으로···니콜라 창업자 '사기' 기소

중앙일보

입력 2021.07.30 16:13

업데이트 2021.07.30 16:34

수소·전기차 업체 니콜라의 트레버 밀턴 창업자가 증권·금융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수소·전기차 업체 니콜라의 트레버 밀턴 창업자가 증권·금융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로이터=연합뉴스

한때 테슬라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수소차 업체 니콜라의 창업자 트레버 밀턴(40)이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와 파이낸셜타임스(FT) 등 경제전문지의 보도를 종합하면 밀턴에 대한 미국 뉴욕 남부연방방검찰의 공소장 일부는 이렇다.

“포브스지 선정 100대 부자 목록에 올라 기업가로서 높은 위상을 갖추길 원했음. 니콜라 주식에 대한 수요를 끌어올리기 위해 거짓 또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을 해서 투자자를 속임.”

증권·금융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밀턴은 한때 미래 선도 스타트업 창업자였지만 최고 징역 25년 형 위기에 처했다. 핵심 혐의는 니콜라의 주가를 띄우기 위해 수소·전기 트럭 등 제품에 대한 정보와 기술을 거짓으로 꾸며냈다는 것이다. 검찰은 “사업의 거의 모든 측면이 거짓말이었다”며 “일부 투자자들은 퇴직금이나 빌린 돈까지 잃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들, 일명 '서학개미'들도 큰 손실을 입었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밀턴 사임 하루만에 서학개미 보유 니콜라 주식의 가치도 1억5000만달러(약 1725억원)에서 340억원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추정됐다.

29일(현지시간) 트레버 밀턴이 뉴욕 남부연방지법을 떠나는 모습. AP=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트레버 밀턴이 뉴욕 남부연방지법을 떠나는 모습. AP=연합뉴스

밀턴은 특히 수소·전기차 분야를 잘 모르고 주식 경험도 많지 않은 평범한 개미 투자자에게 큰 손실을 입혔다. 그가 소셜네트워크(SNS)와 TV 인터뷰, 팟캐스트 등을 통해 직접 홍보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수입이 줄거나 격리 기간 동안 할 일이 없는 이들에게 니콜라는 솔깃한 투자처로 다가왔다.

그럴듯한 그의 말과는 달리 니콜라는 제대로 된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6년 공개된 수소 트럭 ‘니콜라 원’은 수소연료 배터리가 없었고, 심지어 스스로 힘으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니콜라는 2018년 니콜라 원의 주행 장면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는데, 자체 동력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려간 모습을 촬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투자리서치 회사인 힌덴버그 리서치가 이 영상의 팩트체킹을 했다면서 “니콜라엔 기술이나 특허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67쪽 짜리 보고서를 내놓은 게 발단이 됐다. 이후 WSJ와 FT가 추가 의혹을 보도했고, 힌덴버그 측의 의혹 제기 쪽에 무게가 실렸다. FT는 “심지어 문은 미니밴 부품으로 만들어져 촬영 중 떨어지지 않도록 테이프로 감아야 했다”고 전했다. 밀턴은 당시 "힌덴버그는 (주가 하락 베팅을 노린) 공매도 세력으로, 부당하게 의혹을 제기했다"라면서도 사임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2020년 니콜라가 공개한 전기 트럭 '니콜라 리퓨즈'. AFP=연합뉴스

2020년 니콜라가 공개한 전기 트럭 '니콜라 리퓨즈'. AFP=연합뉴스

힌덴버그 보고서 이후, 니콜라 가치는 급전직하했다. 전기차를 생산 협력을 논의했던 제너럴모터스(GM)가 등을 돌렸고, 주가도 급락했다. 그는 결국 보고서가 나온 지 2주 만에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고, 형사 재판을 받게 됐다.

밀턴은 1억달러(약 1150억원)의 보석금을 내고 구치소행은 피한 상태다. 그의 변호인은 29일(현지시간)“주요 증거와 증인이 없는 부실한 수사로 부당하게 기소됐다”고 주장했다. WSJ은 “증권사기 등이 유죄로 인정돼 최고형이 판결되면 밀턴은 징역 25년형에 처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한때 주당 80달러 가까이 치솟았던 니콜라의 주가는 10달러대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최고 80달러 가까이 치솟았던 니콜라의 주가는 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폭락했다. 지금은 10달러 선이다. [자료=블룸버그]

지난해 최고 80달러 가까이 치솟았던 니콜라의 주가는 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폭락했다. 지금은 10달러 선이다. [자료=블룸버그]

밀턴은 지난 2009년 보안기기 업체를 시작으로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이후 디젤 엔진을 압축천연가스(CNG) 엔진으로 바꾸는 일을 거쳐 2014년 니콜라를 세웠다. 그는 니콜라라는 이름을 역사적인 과학자 고(故) 니콜라 테슬라(1856~1943)에서 따왔는데, 일론 머스크가 세운 테슬라 역시 같은 인물의 성을 따온 것이다. 니콜라는 테슬라와 사명(社名)의 어원이 같은 데다 전기·수소차를 생산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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