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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은화의 생활건축

정부가 사서 공급하겠다는 그 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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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은화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전세 시장이 불안하다. 전셋값도 치솟고 물량도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이런 난리 통에 정부가 믿는 구석은 있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전세대책이다. 민간에서 새로 지은 빌라나 오피스텔 등을 정부가 매입해 세놓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대책을 발표하고 며칠 후 김현미 당시 국토부 장관이 매입 임대주택 중 한 곳을 방문했다. 서울 은평구 대조동의 신축 다세대주택, 흔히 빌라로 통칭하는 집이다. 김 장관과 안내를 맡는 변창흠 당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은 방 3개(전용 55~57㎡)인 빌라 내부를 구석구석 살폈다. 그 자리에서 김 장관은 “아파트 수요를 대체할 수 있는 품질을 담보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럴 수 있을까. 매입임대주택을 둘러보는 영상 속에는 집 안만 보인다. 하지만 아파트와 빌라는 바깥 환경에서 엄청난 격차가 벌어진다. 빌라가 빽빽이 들어선 동네의 길은 좁다. 단독주택이 있던 자리에 땅의 효용성을 최대한 높여 짓기 때문이다. 그간 정부가 관심 갖지 않았던, 민간에서 공급해왔던 임대 시장은 질보다 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매입임대주택을 둘러보는 전 국토부 장관들. [뉴스1]

매입임대주택을 둘러보는 전 국토부 장관들. [뉴스1]

공공의 영역인 동네 인프라는 그대로인데 사는 사람만 늘어났다. 그 결과 좁은 길은 주차 공간을 찾지 못한 자동차의 자리가 되기 일쑤고, 아이들이 뛰어놀 놀이터 하나 변변히 갖추지 못한 동네도 많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서울에는 1만여개의 놀이터가 있는데 자치구별로 격차가 심하다. 노원(723개)·강남(660개) 순으로 아파트 단지가 많은 동네일수록 놀이터가 많다. 꼴찌는 중구와 종로구(155개)다.

빌라의 경우 좁은 땅에 빽빽이 짓는 탓에 일조권에 따른 제약도 크다. 뿔이 솟은 듯 상부가 뾰족하거나 계단식인 빌라 모양은 일조권 사선제한 탓인데, 뒷집의 일조권을 위해 북쪽 면을 깎아낸다. 깎지 않고 수직으로 건물을 올려도 되는 법적 높이 상한선은 9m. 그래서 이 안에 3층까지 집어넣는다. 한 층에 3m, 바닥 두께에 천장 설비 공간까지 다 빼고 나면 빌라의 천장 높이는 낮을 수밖에 없다. 천장에 매립형 에어컨 넣기도 힘들다. 정부는 이런 빌라의 품질을 어떻게 담보한다는 것일까.

빌라 동네의 환경이 열악하니 모두 아파트 단지로 이사하길 희망한다. 무엇보다 아파트로 재개발되길 원한다. 결국 집단이 된 개인이 알아서 투자하여 환경 정비를 하는 과정에서 아파트 공화국이 탄생했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고작 하겠다는 일이 민간에서 지은 빌라를 사서 다시 세놓는 것이라니. 정부가 정말 해야 할 일은 아파트 단지 밖 동네의 환경부터 정비하고, 제대로 된 임대주택 모델을 고민해 공급하는 일이 아닐까. 공공이 할 일을 제때 하지 않고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외치고 있으니 모두가 더 간절히 아파트를 원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