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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칼자루를 하나로 모았더니…'어펜저스'가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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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All for one, one for all)." 알렉산드르 뒤마가 1844년 발표한 소설 '삼총사'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다. 총사를 꿈꾸던 달타냥과 삼총사 아토스, 포르토스, 아라미스는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돼 네 개의 칼자루를 한데 모은다. 그리고 "하나가 되어 함께하자"며 이렇게 외친다. 지난 28일 도쿄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 대표팀을 한 줄로 압축한 것 같다.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을 2연패 한 구본길, 김정환, 김준호, 오상욱(왼쪽부터)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을 2연패 한 구본길, 김정환, 김준호, 오상욱(왼쪽부터)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어펜저스'(어벤저스+펜싱)로 통하는 한국 대표팀은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다. 국제펜싱연맹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베테랑 김정환(37·국민체육진흥공단)과 구본길(32·국민체육진흥공단)이 이끌고, 에이스 오상욱(25·성남시청)과 차세대 간판 김준호(27·화성시청)가 따른다. 이들은 2017년 세계펜싱선수권 단체전에서 한국 남자 사브르 사상 최초로 우승한 뒤 한 번도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도쿄에서도 세계 최강의 위용을 재확인했다.

키(1m92㎝) 큰 막내 오상욱은 2년째 세계랭킹 1위를 지키고 있는 '젊은 에이스' 달타냥이다. 유독 팔이 길어 윙스팬(wingspan·양팔을 좌우로 벌린 길이)이 2m5㎝에 달한다. 모두 같은 길이(1m5㎝)의 검을 쓰는 사브르에서 긴 팔은 신이 선물한 무기다. 그의 주특기인 팡트(fente·팔과 다리를 동시에 뻗어 찌르는 기술)에 유럽 선수들도 쩔쩔맨다.

장신 선수는 대부분 발이 느리지만, 오상욱은 스피드도 갖췄다. 그는 "펜싱을 막 시작한 중1 때 키가 1m60㎝로 또래보다 작았다. 작은 키로 상대를 이기려면 더 빠르게 스텝을 밟고, 정확하게 찔러야 했다. 기본기와 순발력 훈련을 매일 했다"고 했다. 오상욱의 키는 중 2때부터 급격하게 자랐다. 고1 때 결국 1m90㎝를 넘겼다. 그는 월등한 체격 조건과 파워에 속도와 유연성까지 겸비한 '펜싱 괴물'로 성장했다.

김정환은 후배들의 정신적 지주다. 삼총사의 리더 아토스처럼 시야가 넓다. 기술만큼 심리전이 중요한 펜싱에서 '교과서 같은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스스로는 "가위바위보를 하듯 경기에 임한다"고 했다.

2018년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도쿄올림픽을 위해 다시 돌아왔다. 대표팀이 김정환이라는 '기둥'을 필요로 했다. 오상욱은 "국제대회에서 실수를 많이 했는데, 김정환 선배 조언 덕에 이겨냈다. 내 목표는 '김정환 선수'처럼 되는 것"이라고 했다. 구본길도 "내 기준은 언제나 '김정환'이다. 나는 형의 발자국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 구본길, 오상욱, 김정환, 김준호(왼쪽부터)가 단체전 금메달을 확정한 뒤 태극기를 들고 기뻐하는 모습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 구본길, 오상욱, 김정환, 김준호(왼쪽부터)가 단체전 금메달을 확정한 뒤 태극기를 들고 기뻐하는 모습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구본길은 대표팀의 '행동대장' 포르토스다. 어릴 때부터 경기 완급 조절을 잘해 '꾀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단체전 금메달의 분수령이 된 독일과 준결승에서도 두 차례 역전에 성공해 경기 흐름을 바꿨다.

특히 김정환과는 형제 같은 호흡을 자랑한다. 처음 국가대표로 발탁된 2008년부터 13년 넘게 동고동락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도 함께 일궜다. 둘은 서로의 성장에 큰 도움을 준 경쟁자이자 파트너였다. 김정환은 "내 최고의 라이벌은 구본길"이라고 했다.

김준호는 '꽃미남' 아라미스 같은 존재다. 단체전 예비 멤버로 나서 네 명 중 가장 짧은 시간을 뛰었지만, 잘생긴 외모로 많은 여성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금메달을 눈앞에 뒀던 결승전 8라운드에서는 상대를 5-1로 제압해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대표팀 안에서 김준호의 비중은 점점 더 커질 것 같다. 맏형 김정환이 도쿄 대회를 끝으로 올림픽 무대를 떠나기 때문이다. 김준호는 그 빈자리를 메울 1순위 기대주다. 한국 남자 사브르의 '황금시대'를 함께 연 그는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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