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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스팬'이 2m5㎝…세계 정상에 우뚝 선 '긴 팔 검객' 오상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 오상욱(25·성남시청)은 키(1m92㎝)가 크다. 한국 펜싱 대표팀 최장신이고, 유럽 선수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도쿄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의 주역이 된 오상욱(오른쪽) [지바=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도쿄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의 주역이 된 오상욱(오른쪽) [지바=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팔도 길다. 윙스팬(wingspan·양팔을 좌우로 벌렸을 때 한쪽 손끝에서 반대쪽 손끝까지의 길이)이 2m5㎝에 달한다. 보통 사람은 키와 윙스팬이 거의 비슷한데, 오상욱은 키보다 13㎝ 길다. 모든 선수의 검 길이가 동일(1m5㎝)한 사브르에서 긴 팔은 중요한 무기가 된다. 그의 주특기인 팡트(fente·팔과 다리를 동시에 뻗어 찌르는 기술)에 유럽 선수들도 쩔쩔 매는 이유다.

체격이 큰 선수는 대부분 발이 느리다. 오상욱은 스피드와 탄력을 함께 갖췄다. 펜싱을 막 시작한 매봉중 1학년 때 키가 1m60㎝로 또래보다 작았는데, 결과적으로 그 덕을 봤다. 그는 "작은 키로 상대를 이기려면 더 빠르게 스텝을 밟고, 정확하게 찔러야 했다. 중 1 때부터 가장 지루한 기본기와 순발력 훈련을 하루도 빠짐없이 했다"고 했다.

중2 때부터 키가 무서운 속도로 자랐다. 3학년 형들을 훌쩍 뛰어넘었다. 대전 송촌고에 진학할 때쯤엔 1m87㎝까지 컸다. 고1 때 결국 1m90㎝를 넘겼다. 키가 작을 때 갈고 닦은 기본기와 순발력은 체격이 커진 뒤 더욱 효과적인 무기가 됐다. 오상욱은 월등한 체격 조건과 파워, 속도와 유연성을 모두 갖춘 '펜싱 괴물'로 성장했다.

고교 시절, 적수가 없었다. 3년간 전국 대회 고등부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휩쓸었다. 고3이던 2014년 12월 국가대표 선발전 3위에 올라 사브르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로 뽑혔다. 이후 빠른 속도로 한국 펜싱의 간판 스타로 성장했다. 태극마크를 단지 4년 7개월 만에 세계랭킹 1위로 올라섰다. 그는 그 순위를 2년째 유지하고 있다.

도쿄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을 딴 김준호, 구본길, 김정환, 오상욱(왼쪽부터) [지바=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도쿄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을 딴 김준호, 구본길, 김정환, 오상욱(왼쪽부터) [지바=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중2 때 펜싱을 그만둘 뻔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 탓이다. 펜싱은 장비 하나를 사는 데 수십만원이 필요한 '비싼 운동'이다. 오상욱의 두 살 위 형도 펜싱을 했다. 자동차 부품 판매업을 하는 아버지의 외벌이로는 두 아들의 펜싱 뒷바라지가 녹록치 않았다. 부모는 둘째까지 펜싱 선수가 되는 걸 반대했다.

다행히 운이 따랐다. 대전시교육청이 예산을 따로 편성해 매봉중과 송촌고에 장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박종한 매봉중 감독의 소개로 '운사모(운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와 인연도 맺었다. 대전 지역 체육 교사와 체육계 인사가 의기투합한 이 모임은 매달 월급의 일부를 십시일반해 체육 유망주를 후원했다. 독보적 재능을 뽐내던 오상욱은 '운사모' 장학생 자격으로 매달 20만원을 지원받았다.

2011년 8월 25일, 중3 오상욱은 '운사모'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장학생으로 뽑힌 뒤 펜싱을 더 재밌게 하고 있다.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도 많이 냈다. 후원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 많은 땀을 흘려서 꼭 보답하고 싶다"고 인사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오상욱은 꿈에 그리던 올림픽 무대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던 약속을 지켰다. 28일 도쿄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그의 롤모델이던 선배 김정환(38), 구본길(33), 김준호(27)와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어렵게 검을 쥐고 피스트에 오른 천재 유망주는 그렇게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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