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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기간 지나도 명퇴 받아줘야" 法행정처, 부장판사에 패소

중앙일보

입력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행정법원[사진 다음로드뷰]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행정법원[사진 다음로드뷰]

‘신청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명예퇴직수당 지급을 거부당한 전 부장판사가 법원행정처를 상대로 소송을 내 승소했다.

20년 넘게 법관으로 재직한 A 전 부장판사는 지난해 2월 한 지자체의 개방형 제2부시장 공모에 응시하며 법원에 사표를 제출했다. A 전 부장판사는 사직서를 내면서 “늦었지만, 명예퇴직 처리가 가능하다면 선처해달라”는 의사도 전했다.

A 전 부장판사가 ‘늦었지만 선처해달라’는 표현을 쓴 것은 왜일까. 법원은 매년 1월~2월 정기인사를 실시하고 비슷한 시기 명예퇴직도 이뤄진다. 2020년 2월 정기인사에 퇴직 사항이 반영되려면 적어도 2019년 11월~12월에는 인사 일정이 공지되고, 퇴직 예정자는 그 의사를 인사 담당 부서에 미리 알리는 것이 실무적인 관례다.

법원행정처는 실제 2019년 11월 각급 법원에 내년도 명예퇴직수당 지급계획을 공문으로 보내고 신청 기간을 그해 12월 23일부터 이듬해 1월 10일까지로 명시했다. 그런데 이 공문을 받은 A 전 부장판사의 소속 법원은 이를 전 구성원들이 볼 수 있도록 공람하거나 이메일 등으로 전하지 않았다.

결국 신청 기간을 넘긴 A 전 부장판사의 명예퇴직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 전 부장판사는 법원소청심사위원회에 심사를 제기했지만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 한원교)는 최근 “법원행정처는 A전 부장판사에 대한 명예퇴직수당 지급 거절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소송에서 행정처 측은 A 전 부장판사가 신청 기한을 넘긴 것이 명확하고, 당시에는 법관 내부망인 ‘코트넷’에 관련 일정도 올라가 있었으므로 A 전 부장판사가 이를 보고 일정을 알 수 있었을 거라고 항변했다.

법원은 “법관 및 법원 공무원의 명예퇴직수당의 경우 구체적인 지급 신청 기간이나 명예퇴직예정일 등이 매년 상황에 따라 결정되므로 공지는 그 대상자들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고지돼야 한다”고 법을 해석했다. 이 사건의 경우 행정처가 지급계획을 각급 법원에 공문으로 보냈지만, 소속법원 기관장이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사실이 있었다.

법원은 “각급 법원에서 통보 조치가 없었을 때 행정처가 마땅히 지휘·감독권을 행사해야 했는데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불이익을 기간 내에 신청하지 않은 A 전 부장판사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A 전 부장판사는 신청 기간을 넘긴 것을 빼고는 명예퇴직수당 신청 요건인 ▶20년 이상의 재직기간 ▶15호봉 이하일 것 ▶차기 연임일까지 기간이 1년 이상 남았을 것을 모두 충족했기 때문에 명예퇴직 수당 지급 대상자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지난 19일 이 판결에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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