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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의 예수’ 카폰 신부, 70년 만에 태극무공훈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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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국전쟁에 참전해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박애를 실천한 ‘한국전의 예수’ 에밀 카폰 신부(오른쪽)가 한국전 당시 미사를 집전하는 모습. [미국 캔자스주 위치토 교구 홈페이지 캡처]

한국전쟁에 참전해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박애를 실천한 ‘한국전의 예수’ 에밀 카폰 신부(오른쪽)가 한국전 당시 미사를 집전하는 모습. [미국 캔자스주 위치토 교구 홈페이지 캡처]

한국전쟁 당시 미군 군종 신부로 참전해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박애를 실천했던 ‘한국전의 예수’ 에밀 카폰 신부(1916∼51·사진)가 대한민국 최고 등급의 무공훈장을 받는다.

오늘 ‘유엔군 참전일’ 청와대서 포상 #미 군종신부로 아군·적군 다 치료 #부상병 돌보다 포로돼 51년 선종 #올 3월 참전용사 유해서 신원 확인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유엔군 참전의 날인 27일 에밀 카폰 신부의 조카인 레이먼드 카폰이 청와대에서 열리는 포상 수여식에서 태극무공훈장을 대리 수상한다고 26일 밝혔다. 행사에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주한 교황대사 대리인 페르난도 레이스 몬시뇰,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가 참석한다.

에밀 카폰

에밀 카폰

카폰 신부는 한국전쟁 직후인 50년 7월 미 육군의 군종 사제로 한국에 파견됐다. 그의 소속 부대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평안북도 운산까지 진격했지만, 그해 11월 중공군에 포위된다. 이때 카폰 신부는 철수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채 통나무와 지푸라기로 참호를 만들어 부상병들을 대피시켰다. 그 후 몇 차례나 중공군의 포위망에서 탈출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대로 남아 부상병을 돌봤다. 결국 그는 붙잡혀 평안북도 벽동 수용소에 수감됐고 51년 생을 마감했다.

카폰 신부는 지난 4월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이 56년 번역한 책 『종군 신부 카폰』으로 생애가 널리 알려졌다. 정 추기경은 신학생 때 우연히 영문판 『종군 신부 카폰』을 읽게 됐고, 이를 직접 번역했다. 지난 3월 5일 미국 하와이주 국립태평양 묘지에 안장된 신원 미상의 참전용사 유해 중에서 카폰 신부 유해가 70년 만에 확인됐다는 소식을 접한 정 추기경은 사후 출간된 개정판 서문에 추가할 구술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개정판 추천사를 쓰고 수정사항을 전달하는 등 생애 마지막까지 카폰 신부의 삶을 전하기 위해 애썼다. 개정판에는 카폰 신부가 소속했던 미국 캔자스주 위치토 교구가 보내준 카폰 신부의 사진들이 담겼다.

카폰 신부는 전쟁터에서 인류애를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미국 정부로부터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받았다. 교황청 시성성(순교·증거자의시복·시성 담당)은 93년 카폰 신부를 ‘하느님의 종’으로 선포했고, 위치토 교구는 시복을 추진하고 있다. 정 추기경도 카폰 신부의 시복·시성을 위해 기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염 추기경은 “카폰 신부님이 태극무공훈장을 받게 돼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쁘고 감사하다”며 “이 땅에서 전쟁 중 목숨을 바친 분들, 우리나라를 위해 참전한 유엔군 청년들의 고귀한 죽음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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