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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안걸리네'···공짜 공진단에 맛들인 네자매 간큰 사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기도 안양시에 사는 네 자매가 보험사기에 첫발을 디딘 건 지난해 3월이다. 자양강장제로 유명한 공진단을 무료로 처방받을 수 있다는 브로커의 꼬임에 넘어간 게 시작이었다.

[요지경 보험사기 세상]

보험처리가 안 되는 공진단을 처방 받은 후 허위로 서류를 꾸며 보험금을 타낸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사진 flickr]

보험처리가 안 되는 공진단을 처방 받은 후 허위로 서류를 꾸며 보험금을 타낸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사진 flickr]

네 자매는 모두 2009년 9월까지 판매된 구실손 보험가입자다. 구실손 보험은 질병이 아닌 상해 치료에 한해 한방치료비를 지급해준다. 공진단 등 보양 목적의 한약은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다.

처음 보험사기에 가담한 건 막내(51)였다. 보험사기 브로커의 소개로 지난해 3월 서초구의 A 한의원을 찾아 공진단 처방을 받았다. 처방받은 공진단 가격은 1박스(20개), 90만원 정도다. 공진단은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탓에 진료기록서에는 욕실에서 미끄러져 발목을 다쳐 어혈을 푸는 한약을 처방받은 것으로 꾸몄다. 허위 서류를 보험사에 내 90만원을 그대로 돌려받았다.

공짜 공진단 사기에 성공한 막내는 큰 언니(60)와 둘째 언니(58), 셋째 언니(55) 등을 보험사기에 끌어들였다. 자매들이 잇따라 한의원을 찾아 공진단을 받아갔다. 이들은 그해 9월까지 13차례에 걸쳐 실제로 공진단을 처방받고, 보험사에는 허위 서류를 내 보험금을 탔다. 허위서류에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졌다' 등의 사유가 기재됐다. 이들 네 자매가 처방받은 공진단 가격만 1000만원 어치였다.

꼬리가 길면 잡히기 마련이다. 네 자매의 보험사기를 알아챈 건 KB손해보험 보험사기특별조사팀(SIU)이다. KB손보의 실손 가입자 136명이 네 자매처럼 A한의원에서만 3억4000만원 어치의 한방치료비를 청구한 게 빌미가 됐다.

KB손보 SIU 관계자는 “2019년 전까지 보험금 청구가 별로 없던 한의원에서 갑자기 보험금 청구가 급증한 데다 서초구에 있는 한의원에 경기도 일대는 물론 부산에서도 환자가 방문해 보험금을 청구한 게 수상했다”고 말했다.

중랑경찰서는 1년 간으 수사를 거쳐 브로커 등이 낀 공진단 보험사기를 적발했다. 연합뉴스

중랑경찰서는 1년 간으 수사를 거쳐 브로커 등이 낀 공진단 보험사기를 적발했다. 연합뉴스

보험사기가 의심된다는 첩보를 받은 서울 중랑경찰서가 수사에 나섰다. 수사 결과 A한의원에서 공진단을 처방받고 보험사기에 가담한 가짜 환자만 8개 보험사, 653명이었다. 이들이 허위로 처방받은 공진단 등의 가격만 16억원 어치에 달했다.

이들 환자는 모두 브로커 B(41)씨가 운영하는 보험사기 조직의 소개로 A한의원을 찾았다. B씨는 병원 등의 마케팅을 대행해주는 홍보대행사를 차린 뒤 영업이 어려운 병원과 한의원 등에 접근했다고 한다.

A한의원 원장에게도 환자명단을 제시한 뒤 환자를 소개해줄 테니 병원 치료비의 일정 비율을 요구했다. 영업에 어려움을 겪던 A한의원의 원장이 이를 받아들이자 홍보대행 계약을 맺고 2019년 6월부터 보험사기를 저지른 것이다.

브로커 B씨는 대표와 본부장 등을 두고 다단계 형식으로 보험사기 조직을 운영했다. 보험사기에 가담하는 환자를 유치해오는 대로 수수료를 받았다. 보험사기 브로커들 다수는 보험설계사들이다.

보험사기 적발금액 및 인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보험사기 적발금액 및 인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설계사를 하며 알게 된 구실손 보험 가입자 중심으로 사기 가담자를 모았다. “공진단을 무료로 처방받게 해주겠다” “몸보신에 좋은 한약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며 환자를 모았다고 한다. 이렇게 모은 환자를 A한의원으로 보냈고, 수익은 한의원과 브로커 조직이 7대 3으로 나눴다.

경찰은 1년간의 수사를 통해 지난달 한의원 원장과 직원 등 관계자 4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브로커 B씨도 지난달 2일 구속됐다. 한의원 원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원장의 척추 수술 등의 이유로 영장은 기각됐다. 한의원은 현재 휴업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주요 관계자들은 검찰에 송치했지만, 아직 환자와 브로커 등에 대한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기로 적발된 금액은 8985억9200만원, 적발된 인원은 9만8826명이다. 공진단 보험사기처럼 허위(과다)진단으로만 275억1300만원의 보험금이 나갔다. 이렇게 샌 보험금은 고스란히 보험료 인상에 반영된다. 네 자매가 가입해 보험사기에 악용했던 구실손 보험의 보험료는 올해에만 17.5∼19.5%씩 인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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