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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집권 동기 마크롱은 연금개혁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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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코로나19 관련 담화를 발표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2019년 12월 연금개혁안을 마련했지만 코로나 19 사태로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최근 백신 접종이 확대되자 재시동을 걸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 관련 담화를 발표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2019년 12월 연금개혁안을 마련했지만 코로나 19 사태로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최근 백신 접종이 확대되자 재시동을 걸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취업준비생 수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졸업하고도 직장 없는 청년이 150만 명을 넘는다. 서너 명 중 1명꼴이다. 미국마저 걱정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거시경제ㆍ환율정책 보고서’를 냈는데 ‘청년들에게 경제적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이런 지적을 받은 건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낙방할 기회조차 없다’는 취준생 한숨이 미국에까지 들렸나 보다. 원인과 해법을 모두가 안다. 노동 개혁이다. 대기업 귀족 노조의 철옹성 기득권엔 손을 대고 기업 양보를 끌어내는 사회적 대타협이 나와야 길이 열린다. 하지만 이 정권은 감히 엄두를 못 낸다. 우선 민주노총이 성역이다.

청년재난 초래한 적폐청산 정부 #새 미래 만드는 게 남은 과제면 #포퓰리즘 걷어찬 프랑스 배우길

 대신 숫자는 만든다. 통계론 청년 취업자가 수십만 명이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고 정부는 청년 고용이 뚜렷한 회복세에 진입한 것처럼 홍보한다. 빚낸 돈을 뿌려 '세금 알바'를 양산했기 때문이다. 늘었다는 청년 일자리의 70%는 1년 미만 임시직이고 그나마 대부분이 음식 배달원 등 파트타임 알바다. ‘미친 집값’도 있다. 곧장 그대로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전 세계 꼴찌 출산율이 이상할 게 없다. 우리 출산율은 지금 전 세계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두 배로 부동의 1위다. 숫자가 뒤바뀔 기미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 동기인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있다. 같은 시기에 모두 ‘적폐 청산’과 ‘데가지즘(구체제 청산)’을 앞세워 당선됐고 남은 임기도 같다. 두 사람이 만든 나라는 영 딴판이다. ‘유럽의 환자’라던 프랑스는 살아났다. 사회당 출신 대통령이 포퓰리즘과 싸운 결과다. 독일 성장률을 제쳤다. 마크롱 정책에 새롭거나 기발한 비법은 없다. 산별 노조의 영향력을 줄이고 공무원을 감축했다. 빚투성이 철도공사에 메스를 들이대 공공부문 군살을 뺐다. ‘게으름뱅이에겐 양보하지 않겠다’며 노조 천국에서 노조와 싸웠다.

 고통이 따르는 구조 개혁으로 지지율은 곤두박질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직접 노동 단체와 대화하고 의회를 설득했다. ‘개혁이 불가능한 나라 프랑스’에서 ‘더 일하는 프랑스’를 외쳤다. 문 정부는 거꾸로다. ‘더 보장하는 한국’으로 죽 달려 지지율은 높았다. 하지만 적폐는 살아남았다. 고용절벽에 부동산 대란, 꼴찌 출산율이 성적표다. 여당 대표 말마따나 '청년 재난시대'다. 문 대통령은 마크롱과 만나 "일자리 창출을 가장 중요한 국정 과제로 삼은 점에서 정치 철학이 비슷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여기까진 그렇다 치자. 문제는 마무리다. ‘끝이 좋으면 다 좋아’란 셰익스피어의 희극도 있다. 대니얼 카너먼은 이걸 ‘피크엔드 법칙(Peak-End Rule)’으로 정리해 노벨상을 받았다. 사람들은 전체 경험을 평균값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가장 극적이거나 마지막 순간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마크롱은 연금 개혁 전쟁에 나섰다. ‘더 일하고 덜 받는 구조’를 제시했다.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니다. 내년엔 재선을 위한 선거가 있다. 그런데도 ‘임기 마지막을 쓸모 있게 보내기 위해서’라며 밀어붙인다. 문 정부에선 현금을 쥐여주는 포퓰리즘에 본격적인 불이 붙었다.

 문 대통령은 얼마 전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내는 게 남은 과제"라고 말했다. 청년 일자리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다. 특단을 언급할 때마다 ‘공공 알바’가 양산됐다. 100조원 가까운 예산을 퍼부었다. 4년 내내 결과를 확인했으면 원점부터 되짚어 볼 때도 됐다. 이제 와서 노동 개혁, 연금 개혁, 공공부문 개혁에 박차를 가할 거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학생은 30% 줄었는데 교육청 공무원은 30%보다 훨씬 많이 늘어난 현실을 수술할 시간은 충분하다. 어차피 청년들이 갚아야 할 몫이다. ‘이제 그만’이라고 멈춰야 청년들에게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 아직도 시간은 많다.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