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정애의 시시각각

문 대통령의 '송구한 마음'

중앙일보

입력 2021.07.26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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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해부대 집단감염 사태를 두고 "국민의 눈에는 부족하고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며 군 탓을 하는 발언을 했다가 사흘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송구한 마음'이라고 사과하는 글을 올렸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해부대 집단감염 사태를 두고 "국민의 눈에는 부족하고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며 군 탓을 하는 발언을 했다가 사흘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송구한 마음'이라고 사과하는 글을 올렸다. [청와대 제공]

“부쩍 잦아진 문재인 대통령 ‘사과 정치’… 내용도, 태도도 바뀌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1월 나온 기사다. 문 대통령이 한 달여 동안 사과 메시지를 네 차례 낸 걸 두고서다. 추미애·윤석열 사태 때 “국민에게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 등 세 차례, 부동산 난맥상에 대해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는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한 차례였다. ‘송구한 마음’(문 대통령의 사과 관용구다)은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건 때도 가졌었다.

군 집단감염 발생 8일 만 SNS 글
"자신이 안 한 일은 기꺼이 사과
한 일엔 사과 꺼리는 태도" 여전

 ‘사과 정치’라니 유난스러워 보이지만 실제 유난스러운 일이긴 했다. 당시 정치 상황 때문일 것이다. 서울과 부산에서 큰 보궐선거가 있는데 지지율이 내려가던 차였다(한국갤럽 기준 38%).

 문 대통령은 “타협하는 것이 정치의 원칙이다. 그러나 원칙을 타협할 수는 없는 것”(『대한민국이 묻는다』)이라고 말하곤 했다. 지금 와 보니 그런 ‘원칙’이 차고 넘쳤다.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도 ‘원칙’의 문제이니 사과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가 됐다. 이른바 ‘도덕적 자기 면허’다. 동시에 “국민의 손을 꼭 붙잡고 함께 가야 한다”는 인식이기도 하다. 그 결과가 “적어도 문 대통령이 여론조사엔 반응한다”(여권 인사)는 관찰이다. 특히 지지층 동향엔 예민하다. 임기 말 대통령으론 이례적으로 40% 안팎의 지지율이 나오고 잠깐이나마 사과 정치를 했던 배경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원래 패턴으로 돌아갔다. 요체는 이렇다. “자신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해 기꺼이 사과할 태세인 걸 보면 놀랍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사과하길 꺼리는 태세도 못지않다.” 원래 영국인들을 묘사한 말이지만 문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7년 민간인 낚싯배 침몰 때 동선을 다 공개하고 다음 날 묵념을 하며 “국가의 무한책임”이라고 사과했던 문 대통령이 지난해 연평도 해역에서 공무원 피살 사건이 났을 땐 동선 공개엔 미적댔고, 엿새 만에 ‘송구한 마음’이라고 했다. 이번 청해부대 집단감염에서도 첫 확진자가 나온 지 8일 만에야 고개를 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청해부대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와 관련, "건강하게 임무 수행을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며 "걱정하실 가족들에게도 송구한 마음"이라고 글을 남겼다.[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청해부대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와 관련, "건강하게 임무 수행을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며 "걱정하실 가족들에게도 송구한 마음"이라고 글을 남겼다.[뉴스1]

 정작 사유도 엉뚱하게 대곤 한다. 조국 사태 때가 대표적인데, 인사권자로서 자신의 책임은 언급하지 않은 채 “우리 사회는 큰 진통을 겪었다”며 사과했다. 공군 성추행 피해자 사망 사건은 현재 군 수뇌부 잘못인데도 구조(“병영문화의 폐습”)를 탓했다. 국민이 아닌 우군에게 미안하다고 한 일도 있다. “마음의 빚”(조국)만이 아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에게 국회 출석이 불발된 걸 두고 수모를 당했다며 “대통령으로서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했다.

 원래 대통령들, 특히나 임기 말 대통령들은 사과하기를 꺼리긴 한다. 사과하기 시작하면 하나하나 다 해야 한다는 구실에서다. 그래도 때때로 국민 앞에 직접 서곤 했다. 이에 비해 문 대통령은 형식도 자기방어적이다. 청와대 내부 회의나 국무회의란 통제된 공간 속에서 A4 용지를 보고 읽거나 참모들에게 대독시킨다. 청해부대 건은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

 그러는 사이 사과할 일은 쌓여 간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만이 아니다. 코로나 확산에 대해선 ‘송구’해 했지만 백신 수급 불안에 대해선 별말이 없다. 경제 운용은 오히려 자랑이고, 청와대 참모들의 말 많은 퇴진엔 침묵했다. 문 대통령이 ‘명운을 건 수사’를 지시(청와대 표현으로 당부)한 사건들 대부분이 무죄로 결론났는데도 당사자들에게 설명이 없다. 오히려 청와대가 펄펄 뛰는 일도 있는데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 그중 하나로, 현 정부 첫 환경부 장관이 실형을 선고받자 “판결문에 ‘블랙리스트’가 안 나온다”고 반박했다. 사실상 강제로 멈추게 한 현 정권 비리 의혹 사건들에도 외려 불만이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읽어보는 건 곤혹스러운 경험이다. 거기엔 이런 대목이 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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