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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더 모닝'] '드루킹' 피해자라는 포털, 범죄 방조자 아닌가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1일 경남도청 앞에서 대법원 판결에 대한 생각을 밝히는 김경수 경남도지사. 송봉근 중앙일보 기자

21일 경남도청 앞에서 대법원 판결에 대한 생각을 밝히는 김경수 경남도지사. 송봉근 중앙일보 기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온라인 여론 조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어제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죄는 형법 314조 2항 위반입니다.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손괴하거나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정보처리에 장애를 발생하게 하여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로 판단됐습니다. 흔히 줄여서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라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겁니다. 피해자가 댓글 작업으로 손해를 본 정치인과 조작된 여론을 접한 국민이 아니고 업무에 방해를 받은 포털사이트입니다. 법적으론 그렇습니다.

원심(항소심) 판결문에는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김동원 등과 공모하여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기계적 방법으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게재된 뉴스 기사의 댓글 순위를 조작함으로써 피해 회사들의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기계적 방법’이 범행의 필요조건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만약 김동원씨(일명 ‘드루킹’) 등이 기계적 방법을 쓰지 않고 댓글 순위를 바꾸었어도 김 지사가 벌을 받았을까요? “킹크랩이라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조직적인 댓글 부대의 활동을 사실상 용인한다는 것은 존경받아야 할 정치인으로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김 지사에게 지난해 항소심 재판부가 징역 2년 형을 선고하며 밝힌 의견입니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가정을 해도 댓글 부대 동원은 잘못된 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은 도덕적 판단일 뿐 법률적 판단은 아닙니다. 만약 ‘드루킹’ 일당이 100% 수작업에 의해서만 기사에 댓글을 달거나 ‘공감/비공감’ 표시를 했다면 김경수 지사는 처벌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집단적 행위에 제재를 가하는 법률은 없습니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조직적으로 선거 관련 댓글 작업을 벌여 관련자들이 처벌을 받은 것은 그들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가진 공무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매크로와 같은 기계적 장치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민간인 집단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고 단순 수작업으로 일사불란하게 특정 정치인을 띄우거나 비방하는 댓글 작업을 벌이는 것은 ‘합법적으로’ 가능합니다.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이나 정치 성향을 공유하는 집단 구성원 수백∼수천 명이 동시에 조직적으로 기사에 댓글을 달거나 ‘공감/비공감’ 표시를 하면 온라인 여론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이른바 ‘좌표 찍기’라는 방법을 통해 특정 세력 구성원들이 타깃으로 삼은 기사나 논평에 댓글 폭탄을 투하합니다. 댓글 ‘순공감순’ 순위를 끌어올리거나 낮추기도 합니다.

이것을 ‘여론 조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조작’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좌표에 따라 움직이는 ‘댓글러’를 선거 유세장의 박수 부대나 동원된 야유꾼 정도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른바 ‘양념론자’입니다. 이와는 달리 그들을 공론의 장을 훼손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여론을 왜곡하는 ‘민주주의의 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지난 수년 동안 포털사이트들이 댓글 칸 운영 방식을 바꿨습니다. 네이버의 경우에는 한 사람이 한 개의 기사에 3개까지만 댓글을 달 수 있게, 공감 표시는 하루에 50회까지만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처럼 나름의 여론 왜곡 방지책을 마련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특정 집단이나 세력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댓글 칸의 지형을 바꿀 수 있습니다. 아주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3년 6개월 전에 터진 ‘드루킹 사건’은 어제 대법원 판결로 일단락됐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 사회에 여론 조작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매크로만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도 확인됐습니다. 여론 왜곡 작업의 중심에는 포털사이트가 있었습니다. 법원 판결문에는 업무에 방해를 받은 피해자로 돼 있습니다만, 포털사이트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마음대로 출입하도록 방조한 술집 주인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논란의 ‘뉴스 장사’를 계속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길 바랍니다. 소탐대실의 위험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대법원은 김경수 지사가 '드루킹'과 댓글 조작을 공모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근거를 설명하는 기사를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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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의 킹크랩 시연 참관, 1·2·3심 모두가 사실로 인정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과연 ‘드루킹’ 사무실을 방문해 ‘킹크랩’ 시연을 봤을까, 아니면 그런 사실이 없었을까. 김 지사의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 확정판결을 내린 건 결국 핵심 쟁점이었던 이 질문에서 김 지사가 아닌 특별검사팀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김 지사가 2016년 11월 9일 ‘드루킹’ 김동원(52·수감 중)씨 조직의 경기도 파주 사무실 ‘산채’를 찾아 포털 댓글 조작 프로그램인 ‘킹크랩’ 프로토타입의 시연을 참관하고, 그 개발 및 운용에 대해 묵시적으로 동의·승인했다고 판단했다. 이 부분에 대한 항소심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다. “‘킹크랩’을 들어본 적도 없고, 시연 역시 참관하지 않았다”는 김 지사 측 주장은 1·2·3심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 변경으로 두 개 재판부가 2심을 맡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총 4개 재판부가 김 지사 주장을 배척한 셈이다.

법원에서 인정된 드루킹과 김 지사의 공모 판단 근거는 몇 가지 더 있다. 항소심은 ▶김 지사가 드루킹으로부터 온라인 정보보고 및 댓글 작업 기사 목록을 받은 점 ▶김 지사 스스로 기사 URL을 드루킹에 보내기도 한 점  ▶드루킹과 수차례 만나고 정치적 현안 등을 논의한 점 ▶드루킹의 요구로 그 측근을 공직에 추천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이 부분에 대한 항소심 판단도 모두 인정했다.

대법원은 다만 김 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세부 법리 해석에서 항소심과 판단을 달리했다. 항소심은 ‘선거운동과 관련하여 금품 기타 이익의 제공 또는 그 제공 의사를 표시하거나 약속하는 행위’라고 규정된 선거법상의 처벌 조항은 특정 후보자가 존재할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다고 봤다. 김 지사가 드루킹 측에 센다이 총영사직을 제안한 2017년 12월 말~2018년 1월 초에는 2018년 6·13 지방선거의 후보자가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게 항소심 판단이었다. 반면에 대법원은 “장차 특정될 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과 관련해 이익 제공 등을 한 경우에도 선거법 위반죄가 성립한다”고 항소심과 다른 판단을 했다. 하지만 센다이 총영사직 제안이 특검 공소사실에 명시된 지방선거가 아니라 2017년 5월 대선 관련 보답의 성격에 더 가깝다고 보고 결론적으로는 항소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대선 관련 선거법의 공소시효(6개월)는 2017년 11월 9일 종료됐다. 센다이 총영사직 거래가 그 이후에 이뤄졌고, 특검팀은 2018년 6월 출범했기 때문에 이 사안과 관련한 대선 관련 기소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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