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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無 파병' 아덴만 회군…노백신 출항·늑장보고·감기약 처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규모 확산으로 임무를 중단하고 전원 귀국한 청해부대 34진에서 확진자가 추가로 나왔다.

파병 출항부터 대책 없어 #보고 체계도 소식이 없어 #감염 확산에도 답도 없어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이 21일 아프리카 현지 항구에서 출항하고 있다. 국방부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이 21일 아프리카 현지 항구에서 출항하고 있다. 국방부

21일 국방부에 따르면 전날인 20일 귀국한 청해부대 34진 장병 301명에 대해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다시 한 결과, 266명이 양성으로 확인됐다. 재검 통보를 받은 12명 중 4명이 추가로 확진판정을 받았다. 전체 감염자는 270명이다.

아프리카 현지서 떠나기 전 확진자는 247명이었는데, 재검사에서 23명 늘어난 셈이다. 음성 판정은 31명이다.

전 부대의 89.7%가 코로나19에 걸린 배경에는 군 당국의 무능과 무지, 무계획 등 3무(無)가 빚어낸 총체적 인재라는 지적이 군 안팎에서 일고 있다. 군 당국이 해외 파병부대를 험지로 보내놓은 뒤 내버려 뒀다는 것이다.

①무대책 출항

청해부대는 지난 2월 8일 진해를 떠났다. 3월부터 군 대상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했기 때문에 청해부대는 불가피하게 제외됐다는 게 국방부의 해명이다.

그러나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국방부가 세운 ‘군 코로나19 예방접종 시행 기본계획’에선 접종 우선순위 1순위가 의무부대였고 2순위가 필수작전부대로 짰다. 군당국이 처음부터 청해부대를 우선순위에 놓은 게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청해부대의 파병 지역은 코로나19 확산이 가장 심각한 아프리카다.

국방부는 질병관리청에 2, 3월 두 차례 해외파병 부대의 백신 접종과 관련한 실무 협의를 열었다. 파병부대뿐만 아니라 장기 파견자 등 해외 출국 장병에 대한 포괄적 지침을 논의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질병청은 국내 백신 접종이 우선이라는 원칙을 밝혔다고 한다. 백신 수급이 어렵기 상황이라 해외 출국 장병을 챙기기 힘들다는 뜻이다. 이채익 의원은 “현지접종이 힘들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출국을 연기해서라도 접종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20일 오후 청해부대 34진을 태우고 서울공항에 도착한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중증 환자가 음압 이송 카트에 실려 내려오고 있다. 연합

20일 오후 청해부대 34진을 태우고 서울공항에 도착한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중증 환자가 음압 이송 카트에 실려 내려오고 있다. 연합

더 큰 문제는 이후 군당국이 청해부대의 백신 문제에 대해 손을 놨다는 점이다. 또 다른 파병부대인 아크부대(아랍에미리트)와 한빛부대(남수단)는 각각 주둔국과 유엔의 협조를 받아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

국방부는 ”청해부대는 다국적군 소속이며, 청해부대가 주로 기항하는 국가는 외국군 백신 접종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입장이다. 그러나 다국적군을 주도하는 미국은 지난해 12월부터 주한미군 장병에 백신을 접종하면서 한국군 카투사 병사는 물론 한국인 군무원도 대상으로 포함했다. 정부 소식통은 ”청해부대를 지휘하는 연합해군사령부(CFM)는 미국이 앞장서 만들었다. 미국에 적극적으로 요청했으면 백신 관련 협조를 받을 수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게다가 합동참모본부는 청해부대에 신속항원검사 키트 대신 신속항체검사 키트 800개를 나눠줬다. 국방부는 지난해 12월 감염 여부를 판단하기는 판별력이 떨어진다며 신속항원검사 키트를 활용하라는 지침이 내린 상태였다. 실제로 청해부대는 지난 10일 감기 환자 40여 명에 대해 신속항체검사를 했지만,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

②뒤늦은 보고

중앙일보 취재 결과 국방부가 청해부대의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보고를 처음 받은 게 14일 새벽이었다. 당시 아프리카 현지에서 한 유전자 증폭(PCR) 검사에서 확진자 2명이 나온 뒤였다.

그러나 합참이 국회에 보고한 문건에 따르면 2일 처음으로 감기 환자가 1명 발견됐다.  박재민 국방부 차관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 6월 28일에서 7월 1일 사이에 현지에서 군수품 적재가 있었다”면서 “당시 기항지에서 바이러스가 유입되지 않았겠느냐고 강력하게 추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감기 환자 숫자는 5일 18명, 9일 78명, 10일 95명으로 급증했다. 청해부대는 10일 합참에 보고했다. 11일 청해부대 감기 환자는 105명까지 불어났고, 합참은 12일에서야 현지 상황을 파악하게 됐다. 그런데도 합참은 관련 보고를 국방부에 알리지 않았다. 결국 첫 감기 증상 환자가 발생한 2일부터 국방장관 보고까지 2주가 걸렸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20일 청해부대 34진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서욱 국방부 장관이 20일 청해부대 34진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군 관계자는 “해외 파병부대를 책임지는 합참이 청해부대의 이상징후를 열흘간 놓치고, 국방부에 보고도 안 한 것은 보고를 중요하게 여기는 군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③타이레놀 처방만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청해부대 병사의 아버지에게서 제보받은 내용에 따르면 2일 이후 감기 환자가 늘어나고 있는데도 함내에선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제보자는 ”아들과의 통화에서 ‘배에 자꾸 독감 환자가 생긴다, 계속 늘어난다, 드러누워 꼼짝도 못 하는 병사도 생긴다, 열이 40도까지 올라간다’는 등의 얘기를 들었다“며 “‘군 간부들은 코로나19가 사람을 통해서 옮는데, 독감 기운이 있는 병사들이 외부인을 만난 적이 없으니 코로나19는 아니라고 강변했다’고 했다”고 전했다.

국방부의 지침을 어기고 가져간 신속항체검사 키트로 51번 진단한 결과 모두 음성으로 잘 못 나온 사실이 청해부대 지휘부의 오판을 불렀다는 추정이다. 하태경 의원에 따르면 청해부대엔 코로나19에 대비한 산소도 없었고 치료제는 전무했다. 대신 “열이 39~40도까지 오르는데 타이레놀 2알씩 주면서 버티라”는 지시가 전부였다는 게 하태경 의원의 전언이다.

한편, 코로나19 대규모 감염으로 임무를 중단한 청해부대 34진의 문무대왕함은 이날 오전 1시(한국시간) 출항했다. 해군 인수단 149명이 아프리카 현지에 도착, 함을 인수한 뒤 방역을 마치고 출항을 준비했다. 한국 도착은 9월 초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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