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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감추는 선전, 통하니까 계속 하겠죠? [이상언의 '더 모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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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체중이 줄어든 모습으로 공개석상에 등장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지난 18일 청해부대 문무대왕함 교체 병력 환송식에서 마이크를 잡은 서욱 국방부 장관. [중앙포토]

최근 체중이 줄어든 모습으로 공개석상에 등장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지난 18일 청해부대 문무대왕함 교체 병력 환송식에서 마이크를 잡은 서욱 국방부 장관. [중앙포토]

 안녕하세요? 오늘은 현실의 문제를 호도하는 정치적 선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께서 수척하신 모습을 보았을 때 우리 인민들은 제일 가슴이 아팠다고요. 모든 사람들이 다 말합니다. 눈물이 저절로 나온다고.” 

지난달 25일 북한 조선중앙TV에 이렇게 말하는 남성 노인이 등장했습니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체중 감소가 식량난을 겪는 인민들과 ‘고난의 행군’을 함께 하기 때문인 것처럼 묘사합니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는 ‘(김 위원장이) 정치적 타격을 피하는 데 골몰한 듯하다’고 중앙일보에 썼습니다(7월 20일 자, 에버라드 칼럼). 인민에 대한 걱정 때문이 아니라 건강이 나빠져 살이 빠졌거나 의도적으로 살을 뺐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게 상식적 판단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모더나사 CEO 스테판 반 사엘과 통화해 우리나라에 2000만 명 분량인 4000만 도즈의 백신을 공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와 모더나가 계약 협상을 추진하던 2000만 도즈가 두 배로 늘어난 것입니다. 도입 시기는 내년 2분기부터입니다.” 지난해 12월 29일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밝힌 내용입니다. 지난해 말은 영국ㆍ이스라엘ㆍ미국 등에서 백신 접종이 이미 시작돼 백신 확보에 뒤쳐진 한국 정부가 궁지에 몰렸을 때였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백신 계약에 나서서 성공했다는 뉴스는 국민 불만을 누그러뜨렸고, 대통령 지지율을 올렸습니다. ‘2분기부터’라던 모더나 백신은 3분기 시작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당도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6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업무추진비 사용 관련 기사가 여러 언론사 사이트에 올랐습니다. 그가 배달 음식으로 거의 모든 점심ㆍ저녁 식사를 해결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 보좌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한 언론사의 기사와 그의 글이 ‘미담’ 확산의 기폭제가 됐습니다. 그는 '그거 아세요? 정은경 청장님은 포장 후 식사도 따로 드신답니다. 혹시 모를 감염위협을 최소화하려고요’라고 썼습니다. 폭증한 코로나19 감염 때문에 정 청장이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느냐는 의문이 퍼졌을 때였습니다. 온라인으로 순식간에 확산된 기사들은 정 청장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웠습니다. 일식집ㆍ갈빗집ㆍ복집에서 1인당 2만∼3만원의 음식 5∼11인분이 자주 배달됐다(4월 기준 16회)는 사실과 8∼10인분의 배달 음식을 15회 이상 주문했는데 1인당 평균 가격이 16000원이었다(6월 기준)는 것은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허술한 영웅담에 본질적 사안이 가려지는 것에는 언론의 책임도 있습니다.

“신속하게 군 수송기를 보내 전원 귀국 조치하는 등 우리 군이 나름대로 대응했지만, 국민이 눈에는 부족하고,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국무회의에서 한 말입니다. ‘신속한 대응’이 ‘안이하게 대처’의 앞에 놓였습니다. 앞서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청해부대 34진 긴급복귀 경과 및 향후 대책’이라는 자료를 통해 ‘국방장관간 긴급 공조통화를 통해 현지 국가의 적극적인 협조를 견인했다. 우리 군사외교력이 빛을 발휘한 사례이자 최단 기간에 임무를 달성한 최초의 대규모 해외 의무후송 사례다’는 자화자찬을 늘어놓았습니다. 국방부는 청해부대 병력 교체 작업에 ‘오아시스 작전’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며 교대 병력을 환송하는 서욱 국방부 장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언론에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무슨 대단한 작전을 펼치는 것 같습니다.

정부의 유치한 선전 쇼가 계속되는 것은 국민과 언론에 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속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속는 사람도 문제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21세기 민주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프로파간다가 설 자리를 잃을 것 같습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회군'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의 상황 인식과 대응 방식의 부적절성을 지적하는 사설이 중앙일보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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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아덴만 참사, 군 통수권자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두 개의 메시지를 내놓았다. 처음은 오전 국무회의에서의 7분여 발언이었다. 최대 현안이랄 수 있는 청해부대 문무대왕함 승조원의 코로나19 집단감염에 대해선 마지막에야 짧게 언급했고, 그마저도 군을 질책하는 내용이었다. 문 대통령은 “신속하게 군 수송기를 보내 전원 귀국 조치하는 등 우리 군이 나름대로 대응했지만 국민의 눈에는 부족하고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주어를 생략하는 특유의 화법으로 “이런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치료 등 조치에 만전을 기하고, 다른 해외 파병 군부대까지 다시 한번 살펴주기 바란다”고 했다. 비판받는 주체 역시 군으로 해석되는 주문이었다.

두 번째 메시지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었다.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의 실종 소식에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문 대통령은 “참으로 황망하다”면서 “외교부의 요청으로 오늘 파키스탄의 구조헬기가 현장으로 출발할 예정이고, 또 중국대사관에서도 구조활동에 필요한 가용자원을 동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너무나도 대비되는 어조이자 자세였다. 청해부대원 301명 중 247명이 확진된 건 세계 해군사에서도 유례없는 집단감염이자 군과 정부의 무관심·태만이 낳은 인재(人災)였다. 또 해군 장병들이 작전을 완수하지 못하고 공군기로 퇴각해야 했다는 점에서 국방 문제였다. 더욱이 청와대와 국방부·질병청이 책임 떠넘기기까지 하고 있으니 행정 난맥상이기도 하다. 누구도 아닌 바로 문 대통령의 책임이란 의미다.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 그리고 군 통수권자로서의 본분을 잊어선 곤란하다. 문 대통령은 김 대장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것과 똑같은 심정으로 청해부대 참사에도 진정으로 ‘황망’해야 할 일이었다. 문 대통령은 그런데도 전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선 아예 입을 다물었고, 어제는 군 탓을 했다. 대신 김부겸 국무총리와 서욱 국방부 장관의 사과로 끝냈다.

2017년 12월 인천 앞바다에서 일어난 낚싯배 전복 사고와도 비교해 보자. 당시 문 대통령은 이른 아침부터 실시간 보고를 받고 지시했다. 그러곤 다음 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 같은 사고를 막지 못한 것과 또 구조하지 못한 것은 결국 국가의 책임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국가의 책임은 무한책임이라고 여겨야 한다”며 사과했다. 민간 사고에도 무한책임을 강조하던 마음가짐이었다면 문 대통령이 어제 군 작전 중 참사에 대해 그리 말해야 했을까. 분명 아닐 것이다.

문 대통령은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하겠다”고 한 취임 약속과 달리 언젠가부터 선별적 사과와 선택적 침묵을 오가곤 했다. 대통령에게 귀책사유가 있음에도 남 탓을 해왔다. 군 통수권이 걸린 ‘아덴만 참사’에도 그랬으니 개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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