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 3시간 야동男···"다시 재판" 법원의 결정적 실수

중앙일보

입력 2021.07.21 06:00

업데이트 2021.07.21 06:27

법원 이미지 그래픽

법원 이미지 그래픽

밤늦은 시간 달리는 고속버스에서 음란 동영상을 보며 자위행위를 한 남성이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법원이 변경된 공소장을 늦게 전달해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검사가 이 남성의 기소 죄명을 바꾸는 신청을 하고 법원이 이를 허가하며 제때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법원 3부 (주심 김재형 대법관)은 A씨에게 공연음란죄 유죄를 인정한 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파기환송했다. A씨는 추후 진행될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게 된다.

옆자리서 3시간 음란 영상 틀어…공연음란죄 인정

2018년 1월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진주로 가는 고속버스에 탄 A씨는 음란 동영상을 틀고 자위행위를 했다. A씨 오른쪽 옆자리에는 한 여성이 탔는데, A씨는 이 여성의 허벅지를 5번 쓸듯 만진 혐의(강제추행)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을 맡은 보통군사법원은 A씨가 여성의 신체를 만졌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무죄 판결을 한다. 그러자 검사는 항소심에서 ‘강제추행’ 죄명을 ‘공연음란죄’로 바꾸는 공소장변경신청서를 법원에 낸다. 강제추행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공연음란죄로 처벌해달라는 취지다.

항소심 법원은 이를 허가하고 심리를 진행해 A씨에 대해 공연음란죄 유죄를 인정했고,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A씨측은 “공연성이 없었다”라고 주장했지만, 항소심은 “당시 만원 버스에서 3시간 가까이 이어진 A씨의 범행은 공연음란죄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고, 옆자리 여성 승객이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결했다.

공소장 송달 늦어 '음란행위男' 방어권 침해

 2019년에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을 2년 정도 심리한 대법원은 항소심을 파기환송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A씨 유ㆍ무죄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A씨가 충분한 방어권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판단에서다.

대법원은 공소장변경허가와 관련된 형사소송법 및 형사소송규칙을 근거로 들었다. 형사소송규칙은 검사가 공소장 변경을 신청할 때 공소장 부본(副本)을 첨부하고, 법원은 즉시 피고인 및 변호인에게 송달하도록 정한다. 공소장에는 피고인에게 적용할 법조가 명시돼 있는데, 이를 제때에 전달받지 못하거나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방어권 행사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2019년 3월 A씨의 첫 공판을 연 다음, 4월 15일 검사의 공소장변경신청서를 받고 3일 뒤 결심공판을 열었다. 결심 공판 당일은 공소장 부본이 발송은 됐지만 피고인도 변호인도 받아보지 못한 상태였다. 결국 검사가 추가된 ‘공연음란죄’에 대해 법정에서 진술할 때 피고인과 변호인은 구체적으로 변론하지 못했다. 최후변론 때도 강제추행죄에 대해서만 무죄를 주장했다.

대법원은 “원심은 공소장변경허가신청서 부본을 피고인 측에 송달하거나 교부하지 않고 공판 절차를 진행해 종결한 다음 추가된 죄명인 공연음란죄를 유죄로 판단했다”며 “이는 피고인의 방어권이나 변호인의 변론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2심으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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