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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전 국민 분노 유발한 백신 예약 먹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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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12일 질병관리청 코로나19 예방접종 사전예약 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지난 12일 질병관리청 코로나19 예방접종 사전예약 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심각한 혼란을 연거푸 겪고도 코로나19 백신 사전 예약 시스템이 또 먹통이 됐다. 그제 오후 8시부터 시작한 53~54세 예약에서 접속이 끊기고 에러가 빈발했다. 엉뚱한 안내 메시지가 돌출된 화면과 함께 분노한 50대의 글이 또다시 SNS에 쏟아졌다. 어이없는 실수가 벌써 몇 번째인가. 백신 갈증에서 비롯된 접속 몰림 현상은 지난달 잔여 백신 접종 당시부터 뚜렷했다. 질병관리청이 매크로 프로그램 우려를 언급했을 정도다.

총리까지 사과하고도 접속 장애 이어져 #20~40대 예약 전에 전문가 투입 개선을

그런데도 지난 12일 시작된 55~59세 예약에서 첫날부터 중단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백신 물량을 접종 대상자의 절반만 확보해 놓고 제대로 알리지 않은 탓이 컸다. 김부겸 국무총리까지 나서 사과하면서 이후 순조로운 접종을 약속했다. 하지만 총리 발언이 나온 지 몇 시간 뒤 재개된 예약에서 재차 장애가 발생했다. 이번 예약까지 한 차례도 순탄하게 마무리되지 못했다.

당국은 “개통 직후 접속자가 일시에 집중되면서 접속 지연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발뺌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라는 반응이 전문가 사이에서 나온다. 한마디로 수준 이하라는 지적이다. 한 네트워크 전문가는 “전체 대상자가 150만 명 정도에 불과한데 몇 번의 실수를 겪고도 이 정도를 소화하지 못하는 시스템을 준비했다는 건 실망스럽다”며 “증권이나 게임 등 동시 접속자가 이보다 훨씬 많고 데이터 용량이 큰 서비스도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간다”고 말했다. 사전 예약 인원에 대한 체계적인 대비가 어설펐다는 얘기다.

시민 불편도 심각하지만 각종 편법에 무장해제당하는 상황이 더 걱정스럽다. 예약자가 자신의 노트북 설정 시간을 바꿔서 막힌 접속을 뚫는 등 각종 변칙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시스템 설계와 보안 등에 심각한 하자가 있는 건 아닌지 정밀한 점검이 필요하다. 최근에도 원자력연구원과 한국항공우주산업 등이 북한 해킹에 뚫린 상황에서 이렇게 엉성한 시스템이 공격당할 경우 큰 혼란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걱정된다. 질병관리청은 더 큰 사고가 터지기 전에 네트워크 및 보안 전문가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정부도 질병관리청에만 맡기고 나 몰라라 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관련 부처와 민간 부문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을 찾아 투입하라.

방역 실패로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한여름 뙤약볕에서 두 시간 넘게 검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한숨이 길어진다. 당국이 이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였다면 온라인에서까지 무작정 대기시키는 무성의를 방치했을 리 없다. 8월 이후 20~40대가 예약을 시작하면 더 많은 접속이 예상된다. 혼란이 재현되지 않도록 하는 게 백신 조기 확보에 실패한 정부가 국민에게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