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겐다즈 굴복시켰던 그들 "내 아이스크림 이스라엘 안판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20 17:14

업데이트 2021.07.20 17:28

지난 5월 미국 연방대법원 앞에서 경찰 개혁 법안 지지 연설 중인 벤 코헨(왼쪽)과 제리 그린필드.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5월 미국 연방대법원 앞에서 경찰 개혁 법안 지지 연설 중인 벤 코헨(왼쪽)과 제리 그린필드. 로이터=연합뉴스

행동주의 아이스크림.
잘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이지만 미국의 유기농 아이스크림 제조업체 벤앤제리스(Ben&Jerry‘s)의 경우엔 찰떡이다. 벤앤제리스가 19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분쟁지역에서 아이스크림 판매를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이날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벤앤제리스는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지(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아이스크림을 팔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지역에서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것은 회사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다. 이스라엘과 아이스크림이 무슨 관계일까.

발단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과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요르단강 서안 지구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모두 수도라고 주장하는 예루살렘 바로 옆이다. 이스라엘은 이곳을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을 통해 강제 점령했다. 현재 팔레스타인인이 약 270만명, 이스라엘이 건설한 유대인 정착촌에는 40만명가량이 거주 중이다. 이스라엘은 이 지역의 상당 부분을 합병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국제사회가 이 지역의 평화 유지를 위해 추진해온 ‘2국가 해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2국가 해법이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모두 인정하면서 평화에 방점을 찍는 것. 양측의 강경파는 모두 반감을 표해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강경파 무장조직인 하마스는 지난달까지도 또다른 분쟁 지역인 가자 지구에서 미사일 공습 등으로 민간인까지 희생되는 유혈 갈등을 빚었다.

이런 상황에 아이스크림 기업인 벤앤제리스가 목소리를 내고 나섰다. 이스라엘은 반발했다. “이스라엘 전역에서 판매를 중단하는 건 아니다”라고 벤앤제리스는 덧붙였으나 이스라엘은 총리까지 나섰다. 나프탈리 베넷 이스라엘 총리는 “벤앤제리스는 스스로 반(反)이스라엘 아이스크림이라는 낙인을 찍었다"며 "도덕적으로 잘못된 결정에 대해 모든 힘을 다해 싸울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벤앤제리스는 이에 대한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스티커 하나로 하겐다즈와 아이스크림 전쟁 승(勝)

벤앤제리스 생산라인. AP=연합뉴스

벤앤제리스 생산라인. AP=연합뉴스

벤앤제리스의 이런 행보가 갑작스러운 건 아니다. 벤앤제리스 창업주인 벤 코헨과 제리 그린필드는 창업 초창기부터 인종차별, 환경오염 등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뉴욕주 롱아일랜드 출신 죽마고우인 이들은 아이스크림 가게를 차리려고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수업비 5달러를 나눠 내고 아이스크림 제조에 관한 통신 과정을 들었다. 1978년 버몬트주 벌링턴에서 자본금 1만2000달러를 모아 주유소를 개조한 매장에서 각자의 이름을 딴 벤앤제리스를 창업했다.

사업이 번창하자 1983년 보스턴까지 진출했다. 이를 계기로 하겐다즈와 벌인 아이스크림 전쟁도 유명하다. 80년대 고급 아이스크림 시장을 장악하던 하겐다즈가 지역 유통업체에 하겐다즈와 벤앤베리스 둘 중 하나만 취급할 것을 종용하면서다. 벤앤제리스는 하겐다즈 소유주 펄스버리의 마스코트인 도우보이를 활용해 “도우보이는 뭐가 두려운 걸까?”라는 스티커를 제품에 붙여 반격에 나섰다. 결국 악화한 여론에 버티지 못한 하겐다즈가 물러섰다.

1988년 첫 메시지는 ‘평화’…인권부터 환경까지

공동 창업주가 사회적 메시지를 내기 시작한 건 창업 10년 만이었다. 이들은 ‘기업의 힘을 사회적, 환경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기업 강령을 마련한 뒤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미국 어린이 5명 중 1명이 빈곤 상태인데, 핵무기에 수십억 달러를 지출하는 레이건 정부에 항의하며 출시한 ‘평화 아이스크림’(Peace pop)이 그 시초다. 이 초콜릿 바 포장지엔 ‘(국방예산의) 1%를 평화예산으로’라는 주장을 담았다. ‘브랜드 액티비즘’의 시초 벤앤제리스가 탄생한 순간이다.

이런 정신은 메뉴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유색 인종을 포함한 모두에게 평등한 사법 형사제도 개혁 운동을 홍보하기 위해 개발한 ‘저스티스 리믹스드’(Justice ReMix’d)나 북극 야생동물보호구역 석유 시추 허용 법안을 반대하는 ‘베이크드 알래스카’(Baked Alaska), 흑인 인권운동(Black Lives Matter)을 지지하는 ‘임파워 민트’(Empower Mint), 반(反)트럼프 운동을 지지하는 ‘피칸 저항’(Pecan Resist) 등이다.

사실 벤과 제리는 회사를 떠난지 오래다. 벤앤제리스는 지난 2000년 3억2600만 달러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에 인수됐다. 이후 정리해고가 이뤄지면서 두 창업자도 결국은 위선자가 아니었는가라는 비난도 일었다. 다만 인수 조건으로 사회적 행동주의 철학 등 창업 정신 계승을 요구했다고 한다. 본사는 버몬트에 두고 세전 이익의 7.5%를 기부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미국 기업에도 생소한 ‘액티비즘 매니저’란 직책도 이때 생겼다. 제리 그린필드는 지난해 벤앤제리스가 낸 ‘백인우월주의를 종식하자’는 성명을 두고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떠났지만, 창업정신은) 잘 이어지고 있어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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