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궁지몰린 '중동 스트롱맨' 네타냐후…15년 최장수 총리

중앙일보

입력 2021.05.31 16:07

이스라엘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총 15년 간 재임한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AP=연합뉴스

이스라엘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총 15년 간 재임한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AP=연합뉴스

총리만 모두 15년을 했다. 나라 최장 집권 기록이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71) 얘기다. 이스라엘에서 ‘비비(Bibi)’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가 벼랑 끝에 섰다. 강경 보수파인 그와 동맹 관계였던 극우 정당이 최근 ‘반(反) 네타냐후’ 세력과 연합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하면서다. 이로써 최근 팔레스타인 하마스와의 교전으로 정치적 활로를 찾는 듯했던 네타냐후는 실각 위기에 처했다.

네타냐후 실각 초래한 건 전(前) 수석 보좌관

지난해 12월 백신 접종을 받는 네타냐후. 이스라엘이 백신 접종 모범국으로 꼽히며 그의 리더십엔 청신호가 커졌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2월 백신 접종을 받는 네타냐후. 이스라엘이 백신 접종 모범국으로 꼽히며 그의 리더십엔 청신호가 커졌었다. 로이터=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이코노미스트 등은 지난 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극우 정당인 야미나의 나프탈리 베넷 대표가 네타냐후에 반대하는 세력과 연합 정부 구성 과정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당초 반 네타냐후 진영은 예시 아티드(17석), 청백당(8석), 노동당(7석) 등 57석으로 구성돼있었다. 여기에 야미나당(7석)이 합류하게 되면 의회 전체 의석(120석) 중 64석을 차지해 과반을 넘기게 되고, 새 정부가 출범해 네타냐후가 물러나는 구조가 된다.

이번 일은 다소 예상 밖이다. ‘중동의 스트롱맨(strongman·강압적 방법으로 장기 집권하는 리더)’으로 불리는 강경 보수파 네타냐후에 대해 극우 정당이 등을 돌리는 일은 가능성이 적을 것으로 예견돼왔기 때문이다. 특히 팔레스타인을 장악하고 있는 강경 무슬림 무장세력인 하마스와의 교전 이후엔 더욱 그랬다. 아랍 국가에 대한 이스라엘 내 반감이 높아진 것도 한몫 했다. 당초 야미나당은 반 네타냐후 세력에 아랍계 정당인 라암이 포함된 점 등을 의식해 연정 구성 회담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베넷 대표는 네타냐후의 수석보좌관 출신으로 네타냐후 정권에서 국방장관을 맡은 이력도 있다.

극우 정당인 야미나당의 나프탈리 베넷 대표. 그는 네타냐후 총리의 전 수석 보좌관을 지낸 인물이다. EPA=연합뉴스

극우 정당인 야미나당의 나프탈리 베넷 대표. 그는 네타냐후 총리의 전 수석 보좌관을 지낸 인물이다. EPA=연합뉴스

그럼에도 거국 연정 구성이 이뤄진 배경에는 총리직을 둔 거래가가 있다는 게 외신의 보도다. 영국 가디언은 “야미나의 베넷 대표가 첫 임기 2년을, 예시 야티드당의 대표가 후반 2년을 맡는 안이 제안됐다”고 보도했다. 네타냐후 역시 비슷한 제안을 했지만, 베넷은 그가 앞서 합의를 깬 선례를 들어 거절했다고 한다.

이외에 지난 2년간 네 차례나 총선을 치르는 등 연립정부 구성을 둘러싼 정치적 혼란이 계속된 점, 네타냐후가 뇌물 등 혐의로 재판을 받는 점, 하마스와의 휴전 합의에 대한 반발 등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극우부터 아랍계까지 다양한 세력으로 구성된 ‘무지개 연정’의 특성상 연정이 깨질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최종 연정 구성 시한은 다음 달 2일까지다.

최연소·최장수 총리…엘리트 이미지의 보수 강경파

유엔(UN)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지낼 당시의 벤야민 네타냐후. 중앙포토

유엔(UN)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지낼 당시의 벤야민 네타냐후. 중앙포토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1996년부터 99년까지 3년, 2009년부터 현재까지 총 15년 넘게 총리직을 수행해왔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인 48년 텔아비브에서 태어난 그는, 이스라엘 영토에서 태어난 첫 총리라는 상징을 갖고 있었다. 또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와 하버드대에서 공부하고,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에서 일하는 등 엘리트 이미지를 지닌 데다 주미 부대사, 유엔(UN) 주재 이스라엘 대사 등을 지내면서 뛰어난 언변을 자랑하기도 했다.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88년 초선 의원이 된 뒤 5년 만에 보수당인 리쿠드의 수장이 됐다. 이후 96년엔 최연소 총리 타이틀도 달았다. 하지만 99년 총선에서 리쿠드당이 패배한 데다 부패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총리직에서 내려왔다. 이후 외무·재무장관으로 발탁됐지만, 샤론 당시 총리가 가자지구 정착촌 철수를 결정하자 이에 반대해 재무 장관직을 내려놨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전 미국 대통령과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비교적 일치된 외교·안보 정책을 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왼쪽) 전 미국 대통령과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비교적 일치된 외교·안보 정책을 폈다. AFP=연합뉴스

다시 총리직에 복귀한 것도 보수층의 지지 덕분이었다. 외교·안보 정책을 두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는 갈등을 겪기도 했다. 특히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 유대인 거주지인 ‘정착촌’ 건설을 두고 마찰을 빚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정권과는 2019년 이스라엘에 유리한 ‘중동평화구상’ 발표 당시 동석하는 등 비교적 일치된 정책 행보를 보였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등으로부터 고급 샴페인인 돔 페리뇽을 비롯해 수십만 달러 상당의 선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2019년 이스라엘 역사상 총리로선 처음으로 기소됐다. 이외에도 유력 언론에 자신에 대한 우호적인 기사를 내달라고 요구한 뒤 그 대가로 경쟁지에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도 있다. 총리직에서 물러날 경우 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커진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