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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비없는 학생 위해 기숙사" 93세 중·고교 설립자···"장학금 1억 주겠다”

중앙일보

입력

연간 장학금 규모가 약 7000만원에 재학생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시골 고등학교가 있다. 해마다 졸업생 가운데 절반 정도는 서울에 있는 대학이나 지방 국립대 등에 진학한다. 충남 논산시 양촌면에 있는 건양고 얘기다.

김희수 건양대 명예총장이 설립한 중·고교

김희수 건양대 명예총장(왼쪽 앞)이 지난 15일 건양고를 찾아 학생들과 대화하고 있다. 김방현 기자

김희수 건양대 명예총장(왼쪽 앞)이 지난 15일 건양고를 찾아 학생들과 대화하고 있다. 김방현 기자

건양고는 1983년 3월 개교 후 올해로 38년을 맞았다. 건양대 김희수(93) 명예총장이 1979년 이곳에 있던 중학교를 한 지 4년 만에 고교(양촌고)까지 설립했다.

서울 영등포에서 안과 병원을 운영하던 김 명예총장은 “1978년 늦가을 무렵 양촌면장과 이 지역 유지 몇 분이 병원에 찾아와 ‘중학교 재단에 빚이 많아 도저히 운영이 어렵다고 하니 맡아달라’고 한 게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진료에 너무 바쁘다’며 거절했는데 두 번째 찾아왔을 때는 뿌리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중학교를 인수하면서 재단 측 빚 1억3000만원을 갚아주고, 1억여원을 투자해 학교를 아예 새로 짓다시피 했다. 김 명예총장은 연세대 의대를 나와 1962년 영등포에 안과병원을 열었다.

충남 논산시 양촌면 건양고등학교 심리상담 동아리반 학생들이 독서토론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논산시 양촌면 건양고등학교 심리상담 동아리반 학생들이 독서토론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서울서 병원 운영하다 고향 중학교 인수 

김 명예총장은 1991년 논산시 은진면에 건양대를, 2000년에는 대전에 건양대병원까지 잇달아 설립했다. 1994년에는 양촌고 이름을 건양고로 바꿨다. 교사와 학생들이 그에게 “학교 이름에 ‘촌(村)자’가 들어가 좀 세련되지 못하다”며 바꿀 것을 건의했다고 한다. 건양(建陽)은 ‘빛을 세우다’란 의미다. 건양 중·고는 김 명예총장이 태어나서 자란 집 인근에 있다. 350년 된 그의 생가는 논산시 향토문화유적 20호로 지정돼 있다.

김희수 건양대 명예총장. 사진 건양대

김희수 건양대 명예총장. 사진 건양대

차비 없는 학생 위해 기숙사 지어 

김 명예총장은 건양고 개교 2년 만에 최신식 시설을 갖춘 기숙사를 지었다. 외지 학생이 돈을 들이지 않고 학업에만 전념하게 하자는 차원이었다. 김 명예총장은 “당시 버스요금조차 없어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이 많았다”고 했다.

현재 건양고 전교생 246명은 모두 기숙사(3개 동) 생활을 하고 있다. 이 학교는 신입생을 충남 전역에서 선발한다. 건양고 박찬범 교장은 “전교생을 기숙사에 수용하는 사립고는 별로 없을 것”이라며 “덕분에 2009년 기숙형 사립고로 지정됐다”라고 말했다.

충남 논산시 양촌면 건양고등학교 박찬범 교장과 학생들이 '나는 할 수 있다' 표지석에서 대화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논산시 양촌면 건양고등학교 박찬범 교장과 학생들이 '나는 할 수 있다' 표지석에서 대화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연간 7000만원 장학금 지급

김 총장은 대규모 장학금도 마련했다. 김 명예총장 개인 돈을 보태고, 외부 장학금도 유치했다. 올해 총 장학금 액수는 7000만원에 이른다. 현재 전교생 가운데 30% 이상은 장학금을 받는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 등이 골고루 혜택을 보고 있다. 1인당 장학금은 연간 50만원~200만원이다.

건양고 졸업생이 건양대에 진학하면 입학금과 등록금이 면제된다. 김 명예총장은 “건양고 동문 장학금 등 외부 장학금을 더 많이 유치해 연간 장학금 액수를 1억원으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건양고는 색다른 교과 과정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건양대 교수가 직접 강의하는 과목이 개설됐기 때문이다. 중국어 회화, 현대세계문화, 프로그래밍, 아동생활지도, 간호의 기초 등은 교수가 대면 또는 비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하는 장점을 살려 야간에도 학생 자치활동, 인문학 감성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이 학교 3학년 박병현 군은 “경쟁력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농촌 고교”라며 “기숙사 등 학교 시설도 좋고 장학금 혜택도 많아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희수 건양대 명예총장 생가. 논산시 향토문화유적으로 지정돼있다. 김방현 기자

김희수 건양대 명예총장 생가. 논산시 향토문화유적으로 지정돼있다. 김방현 기자

의대생 등 절반이 수도권 진학

건양고는 진학 실적도 준수하다. 최근 4년 동안 의과대 4명과 교육대 4명, 사관학교 3명 등 합격자를 배출했다. 또 졸업생 가운데 절반 정도는 수도권 지역 대학과 지방 거점 국립대에 진학한다.

학교는 학교 시설 개선에도 힘을 쏟고 있다. 오는 9월부터 내년 3월까지 23억원을 들여 건양중과 건양고를 연결하고, 도서관 규모를 크게 늘린다. 상상이름 공작실, 과학실 등도 만든다.

김 명예총장은 “시간이 날 때마다 건양중·고를 찾아 학생들과 대화를 나눈다”며 “학생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게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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