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V토크] 엄마가 되어 돌아온 김해란

중앙일보

입력 2021.07.19 08:30

흥국생명 리베로 김해란. [한국배구연맹]

흥국생명 리베로 김해란. [한국배구연맹]

'디그 여왕'이 엄마가 되어 돌아왔다. 여자배구 흥국생명 김해란(37)이 1년 만에 코트로 돌아온다.

김해란은 V리그 역사상 최고 리베로다. 스파이크를 받아내는 디그는 9819개로 통산 1위다. 상대 스파이크 코스를 읽고, 받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우승복이 없었지만 2018~19시즌 흥국생명 통합우승을 이끌어 한을 풀었다. 하지만 다음 시즌을 마친 김해란은 은퇴를 결정했다. 미뤄왔던 출산 때문이었다. 통산 1만 디그와 올림픽 3회 연속 출전 기록이 걸렸지만 김해란은 "아이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김해란은 2013년 축구선수 출신 조성원 보은상무 코치와 결혼했다. 하지만 순발력과 민첩성이 중요한 포지션 특성상 출산에 대한 부담이 컸다. 김해란은 "지금까지 쌓아온 게 무너지지 않을까 고민했다"고 떠올렸다.

흥국생명 리베로 김해란(왼쪽부터 시계방향)과 남편 정성원 보은 상무 코치, 아들 하율. [사진 김해란]

흥국생명 리베로 김해란(왼쪽부터 시계방향)과 남편 정성원 보은 상무 코치, 아들 하율. [사진 김해란]

김해란은 지난해 12월 아들 하율을 낳았다. 그의 메신저엔 아들 사진으로 가득하다. 김해란은 "너무 예쁘다. 지금은 출퇴근하면서 연습중이다. 남편도 문경에서 주로 지내기 때문에 친정어머니가 부산에서 올라와 육아를 도와주시고 있다"고 했다.

처음부터 복귀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두려움이 컸다. 김해란은 "체중이 20㎏ 정도 늘어났다. 그런데 운동을 하다 보니 빠르게 몸 상태가 돌아오더라"고 했다. 결국 1년 만에 코트로 돌아왔다. 박미희 감독도 힘이 됐다. 김해란은 "복귀를 고민할 때 감독님이 '일단 해보자. 정 안 되면 코치를 해도 된다'고 했다. 감독님도 아이들을 키워보셨기 때문에 많이 배려해줬다"고 전했다.

1년 동안 떠나 있었지만 김해란의 몸 상태는 빠르게 '선수 모드'로 바뀌었다. 김해란은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웨이트 트레이닝과 공을 갖고 하는 연습도 했다. '내가 아이를 낳은 것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힘든 훈련도 재밌게만 느껴졌다.

김해란은 "원래 목표가 서른 살에 은퇴하는 것이었고, 그걸 조금씩 늘려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빨리 출산하는 게 나을 뻔 했다는 후회도 했다"며 "건강하게 낳아주신 엄마, 아빠에게 감사드린다"고 웃었다.

순조로운 복귀 준비 과정 도중 암초를 만났다. 지난 7일 뼛조각 제거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게 이겨내고 있다. 김해란은 "6년 전부터 왼팔꿈치 통증이 있었다. 참고 왔는데, 간단한 수술이라고 해서 받았다. 생각보다 회복이 빨라 트레이너 선생님도 놀랐다"고 했다. 김해란은 "정규시즌 개막 전엔 완벽한 몸 상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떠난 사이 팀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 시즌 우승후보로 꼽혔지만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다. 틈틈이경기를 보고, 선수들과 연락을 해왔던던 김해란의 마음도 아팠다. 김연경은 1년 만에 팀을 떠났고, 2018~19시즌 우승 멤버 중 주전급은 이주아와 김해란만 남았다. 최고참 김세영도 은퇴하면서 김해란이 남은 선수들을 다독이고, 이끌어가야 한다.

김해란은 "다 떠나서 선수들의 마음이 중요하다. 많이 힘들었고, 남은 선수들도 '힐링'이 필요하다. 다행히 선수들이 잘 털고, 이겨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밖에서 보기엔 전력 구성이 안 좋지만, 경기는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후배들에게 스트레스는 안 주려고 하지만, 이긴다는 마음으로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김해란은 이제 욕심을 버리고 코트에 서겠다고 했다. "좋은 엄마가 첫 번째 목표다. 배구선수로서는 출산을 해도 잘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누군가 해내면 후배들도 출산 이후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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